파키스탄에서 총 사업비 1조원 규모 수력발전소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건설 대기업 A사는 최근 현지 정부로부터 “사업권을 회수하겠다”는 청천벽력같은 통보를 받았다. 발전소 공사부터 향후 30년간 운영·관리까지 맡아 운영수익과 배당까지 받아가는 민관협력사업(PPP·Public-Private Partnership)을 날리게 될 판이다.
이 사업은 지난 2012년 A사와 한국중부발전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낙찰받았던 것이다. 운영수익과 투자비 전액 회수를 파키스탄 정부가 약속하는 최소운영수익보장(MRG) 방식에다 발전소 주 수입원인 전기요금을 달러로 지급해주는 파격적인 조건이어서 세계은행의 국제금융공사(IFC)도 투자할 만큼의 ‘알짜’ 사업으로 입찰 당시에도 화제를 모았던 프로젝트다.
파키스탄 정부가 사업권 회수 통보를 한 것은 본계약을 맺기 직전에 한국중부발전이 갑자기 사업에서 발을 뺀 게 원인이었다. 투자금 300억원 이상의 해외사업에 참여하는 공기업이라면 필수로 받아야하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이 사업이 ‘신중’ 등급을 받자 부담을 느껴 사업 추진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파키스탄 정부가 재입찰 카드를 꺼낸 마당인데다 중국 거저우바그룹(CGGC)과 시노하이드가 눈독을 들이고 있어 입찰이 다시 진행되면 이들 업체에 사업권이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해외PPP시장이 글로벌 건설시장 전체의 13%인 연 100조원대로 성장하면서 미국과 일본 등 세계 각국의 글로벌 건설사들이 선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한국기업의 자리는 찾아볼 수가 없다. 고속철이나 댐 등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운영실적이 있는 국내 공기업과의 동반진출이 필수적이지만, 정작 이들 공기업은 기획재정부와 KDI의 예비타당성 조사라는 ‘족쇄’ 때문에 사업을 포기하거나 진출할 시도 자체를 하지 않고 있어서다.
운영수익과 배당까지 보장받는 PPP사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부실한 사업성 평가 지표, 사업 리스크를 언급하면서도 결국 최종 결정은 공기업 경영평가라는 단두대 앞에 철저히 ‘을(乙)’이 될 수밖에 없는 공기업에게 미루는 KDI의 무책임 탓이다. 결국 “해외건설 수주 1조달러, 5대 글로벌 건설 강국”이라는 정부의 목표도 공염불이 될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A기업과 중부발전 뿐 아니라 한국수자원공사와 국내 건설사 컨소시엄이 따낸 총 사업비 1조원 규모의 또다른 파키스탄 수력발전 프로젝트, 서부발전의 미얀마 양곤 가스복합발전사업도 KDI의 예타에서 부정적인 성적표가 나온 후 결국 사업이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민관협력사업(PPP)은 장기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보니 각국 정부가 입찰 과정에서 핵심적으로 평가하는 요소가 운영실적이다. 국내 인프라 운영은 공기업이 독점해 한국 기업이 이 사업에 뛰어들려면 국내 공기업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13년 공기업이 총사업비 500억원·투자비 300억원 이상의 해외사업에 참여할 경우 예타 조사를 받도록 하는 지침이 운영되면서 건설사들의 악몽이 시작됐다. 파키스탄 수력발전을 비롯해 웬만한 인프라 공사 규모가 최소 5000억원을 넘기 때문에 최근 발주되는 PPP 사업은 대부분 예타 대상이다.
문제는 이해못할 기준 탓에 예타를 통과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것이다. 우선 사업의 위험성을 판단하는 지표가 사업 자체가 아니라 그 사업을 발주한 ‘나라’에만 한정돼 있다. 안성현 대한건설협회 시장개척실 부장은 “국가 신용도가 낮은 개발도상국에서 나온 사업이면 사업장별 사정을 따지지 않고 일괄적으로 높은 리스크를 적용한다”며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사업에 직접 참여하고 국제투자보증기구(MIGA)가 손실회피를 보장해줘 사실상 위험이 없어도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한번 예타가 시작되면 최소 6개월은 걸리다보니 마감기한이 있는 입찰사업 참여는 꿈도 꾸지 못한다. 해당국 정부와 양해각서를 맺고 사업을 추진하다가 ‘예타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으니 기다려달라’고 하자 현지 정부가 협약을 깨고 다른 업체를 물색하고 나선 사례도 있다. 은행 대출 활용비율이 높은 PPP사업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고 무조건 투자원금(은행대출+실 투자비) 대비 수익률을 따져 사업 수익성을 평가절하하는 것도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책임회피다. KDI 예타에 참여한 공기업들이 받아든 ‘신중’ 혹은 ‘매우 신중’ 등급은 소위 ‘그레이 존(Gray zone)’으로 분류된다. 신청한 공기업의 자체 판단에 따라 투자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평점이 긍정·부정적 평가를 가르는 0.5에 근소하게 미치지 못할 경우 이런 결과가 나온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지금까지 0.5미만의 점수를 받고 사업을 추진한 공기업은 단 한군데도 없고 앞으로도 안나올 것”이라며 “KDI가 리스크가 있다고 낙인찍은 사업에 나서기는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런 바늘구멍을 뚫고 가까스로 해외 투자에 성공해도 문제는 남는다. 사업 주도권을 쥐고 더 많은 운영·배당수익을 가져가려면 국내 공기업이 특수목적회사(SPC)에 최대한 많은 지분으로 참여해야만 하지만 국제회계기준(IFRS) 기준에 따라 SPC가 사업초기 필연적으로 질 수밖에 없는 부채는 고스란히 모회사인 공기업의 부채로 인식된다. 정부가 공기업 부채감축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공기업이 자발적으로 이런 부채를 떠앉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이 해외 PPP사업을 따내 정상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지난해 우리나라 건설사와 공기업이 따낸 해외건설 수주금액인 462억 달러 가운데 민관협력사업인 PPP를 포함한 투자개발사업은 고작 13억 달러 규모로 전체의 3%에 불과하다.
■ <용어 설명>
▷민관협력사업(PPP·Public-Private Partnership) : 주로 개도국 정부나 공기업이 교량, 댐, 플랜트, 도로 등의 인프라스트럭처 공사를 해외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말한다. ‘투자자’로
[김태성 기자 / 이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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