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한국은행 조찬강연에서 "지금과 같은 거버넌스(정치체제)로는 한계가 온다"며 개헌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분권형 (대통령제)이든 내각제이든 현 체제에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관 재임 중에도 5년 중임제로의 개헌을 주장했던 윤 전 장관은 최근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출범한 싱크탱크 '새한국의 비전' 발기인에도 이름을 올린 바 있다.
또 그는 "삼권분립이 중요하다"면서 "현재는 입법권력이 너무 강하며 상대적으로 행정부의 재량이 커져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고시에 수석합격한 정통 공무원 출신인 그는 정부부처 세종시 이전 등과 관련해 청와대와 국회에 여러 차례 비판의 날을 세워왔다.
윤 전 장관은 고령화·저출산 시대에는 복지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조세 부담에 대해선 정부와 정치권이 솔직한 자세로 국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18% 수준인 조세부담률을 당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6% 수준으로 올리기는 어려워도 20%대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그의 강연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국내 경제 주체가 '기회비용'과 관련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 윤 전 장관의 생각이다.
윤 전 장관은 이날 강연에서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 개혁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한 지금 주입식·암기식 교육으로는 안 된다"며 "도전과 창의정신이 필요한데 지금 같은 교육시스템으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강연 중에 민선 교육감들이 교육 개혁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질타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졸 실업자보다 대졸 실업자가 더 많은 기형적인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윤 전 장관은 이와 함께 "노동시장 유연성·저출산 등 문제가 많은데 나라를 이끌어 가야 할 정치가 실종됐다"고 지적했다.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총체적 난국의 시대"라고 한국이 처한 상황을 규정한 그는 "역사적으로 정치 실종은 외침을 초래하고 국내에서는 갈등의 도화선이 됐다"고 염려했다. 청와대와 국회 모두 정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윤 전 장관은 특히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접근 방식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구조조정은 산업 재편이란 측면에서 기본 밑그림이 나와야 한다"며 "조선업이라면 앞으로 국제 경쟁 체제에서 드롭(drop)할 것인지 다른 부분으로 돌아갈 것인지 그렇다면 공급과잉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운, 건설, 철강 및 석유화학 등 각 주무부처에 이런 밑그림을 먼저 그려야 했다"면서 "지금 순서는 잘못됐다. 금융위원장이 산업 재편을 어떻게 하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전 세계 경제동향이나 앞으로 일어날 리스크에 대해 한은과 정부가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며 통화당국과 재정당국이 보조를 맞출 것을 주문했다. "기재부 장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한은에서 강연하게 돼 영광"이라고 밝힌 그는 역으로 전임 한은 총재가 기재부에 가서 강연을 하면
윤 전 장관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의견을 나눠 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면서 "중앙은행은 창립 이후 재정부 쪽과 항상 대립해 왔는데 이렇게 (불러)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한은을 높이 평가한다"고 이주열 한은 총재를 칭찬하며 강연을 마쳤다.
[정의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