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의 늑장 공시 사태 이후 두 달 동안 바이오·제약주에서만 시가총액 13조원이 증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약 개발과 기술 수출에 대한 기대가 줄어들면서 과열됐던 바이오 업종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바이오·제약 기업 다수의 기업가치 평가가 정상화된 만큼 실적 중심의 수출 기업을 위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날 기준 코스피200에 포함된 12개 바이오·제약 상장사들의 시가총액은 모두 17조9068억원으로 집계됐다. 한미약품의 기술 수출 계약 해지 사실을 공시하기 전인 9월29일 시총 31조814억원 대비 13조1746억원(42.4%)이 급감한 수치다.
시가총액 감소폭이 가장 컸던 곳은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다. 두 달여 만에 8조원 가까이 시가총액이 급감했다. 이 기간 동안 한미약품의 주가는 같은 기간 62만원에서 31만원으로 반토막이 났고 한미사이언스는 14만원에서 5만9000원으로 급락했다.
이밖에도 시가총액이 큰 폭 감소한 곳은 대부분 고평가 우려가 컸던 종목들로 확인됐다. 영진약품은 해당 기간 동안 주가가 1만3000원대에서 7000원선 초반까지 하락하며 시가총액이 1조원 이상 줄었지만 주가순자산비율(PBR) 13배로 여전히 업종 최고 수준이다. 이 업체는 지난해 영업이익 51억원을 기록했으며 지난 5년간 세자릿수 영업이익도 달성한 적이 없다. JW중외제약은 9월까지만 해도 진행 중인 표적항암제 임상 기대감에 PBR이 7배를 웃돌았으나 이후 시장 우려가 확대되며 시가총액이 9000억원 이상 감소했다. 동아에스티와 대웅제약은 시가총액 200위권 밖으로 밀렸다.
바이오·제약주에 대한 시장의 부정적 인식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7일 당뇨 비만 치료제 임상 중단설에 하루에만 10.7% 급락한 한미약품은 계약 상대방인 얀센 측이 단순히 환자 모집을 보류한 것이라고 답변했음에도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시가총액 1조원을 넘나들며 장외시장 최대어로 꼽히던 신라젠은 지난 6일 상장과 함께 3거래일 간 급락하다가 이날 겨우 반등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우려도 확대되는 모습이다. 대규모 시설 투자 영향에 3년 연속 적자를 감안해도 수익성을 증명하지 못한 기업이 지나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의약품 위탁 생산업체인 삼성바이오로직스 기업가치의 핵심은 바이오시밀러 연구·개발 자회사 바이오에피스의 파이프라인(바이오의약품 개발단계)”이라며 “그러나 현재 에피스 파이프라인을 거치는 위탁 생산은 거의 없어 내부 파이프라인을 기업가치에 반영하는 것은 무리”라고 설명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사업군이 비슷한 셀트리온 수준(연간 2000~25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시점이 2022년 이후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바이오·제약주들의 급락은 과열된 분위기가 해소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코스피 200위권 내 12개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총 8300억원에 불과했으나 한미약품발 악재 직전 시가총액은 31조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영업이익 6조3500억원을 기록한 현대차의 시가총액 30조원(9월말 기준)과 비슷한 수준으로 신약 개발 프리미엄이 얼마나 과도한 프리미엄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구자용 동부증권 연구
[이용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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