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립 20년 맞은 미래에셋 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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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금융그룹이 다음달 1일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미래에셋이 국내 1호 자산운용사, 국내 1호 공모펀드 출시 등 국내 자본시장의 새로운 개척자 역할을 해왔기에 20주년의 의미는 남다르다는 평가다.
IMF 외환위기 사태 발발 직전인 1997년 7월, 그룹 모태인 미래에셋벤처캐피탈(현 미래에셋캐피탈)과 그룹 핵심 계열사인 미래에셋투자자문(현 미래에셋자산운용) 설립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금융투자업에는 일대 혁신이 일어났다. 박현주 회장은 1997년 7월 최현만 수석부회장, 구재상 전 부회장 등과 공동으로 미래에셋투자자문을 설립했다. 자본금은 단돈 10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회사 창립 직후 발생한 IMF 사태는 기회로 작용했다.
미래에셋 출범 당시인 1997년 6월 말 코스피는 745.40에서 IMF 사태 직격탄을 맞으며 다음해 6월 말에는 297.88로 고꾸라졌다. 그러나 코스피는 26일 사상 최고인 2388.66에 거래를 마감하며 전인미답인 3000선 고지를 향해 나가고 있다. 미래에셋 출범 이후 코스피는 220%나 상승했다. 월말 기준 저점인 297.88 대비 무려 702% 급등이다. 같은 기간 코스피 시가총액은 136조2300억원에서 1541조9200억원으로 11배 늘어났다. 그만큼 국내 자본시장 규모가 커진 셈이다.
이 같은 기회 요인을 바탕으로 미래에셋은 대한민국 재테크 지형을 바꿔놨다. 예·적금이 고작이던 재테크 시장은 미래에셋의 '박현주 1호'를 시작으로 '인디펜던스 펀드' '디스커버리 펀드' 등 펀드 위주로 급속히 재편됐다. 펀드에 뭉칫돈이 몰려들면서 코스피시장은 한 단계 레벨업되는 계기를 맞았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자산운용 설립 직후인 1998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국내 최초 뮤추얼펀드 '박현주 1호'를 선보이며 간접 투자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뮤추얼펀드는 투자자 자금을 모아 투자회사를 설립해 주식·채권·선물옵션 등에 투자한 후 이익을 나눠주는 투자신탁을 말한다.
당시 '박현주 1호'는 판매 시작 2시간30여 분 만에 500억원어치가 완판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평균 수익률이 90%를 웃돌면서 입소문을 탔고 '박현주 신화'가 시작됐다. 당시 뮤추얼펀드의 대대적 성공은 금융시장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졌다. 다른 금융회사들이 부랴부랴 유사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을 정도다.
그러나 2000년 벤처 거품이 꺼지고 증시가 내리막길을 타면서 펀드 수익률이 가파르게 하락했다. 2000년 11월 운용을 마칠 당시 수익률은 -44.92%를 기록해 투자자들의 원금이 반 토막 난 것이다.
하지만 박현주 신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1년 선보인 국내 최초 개방형 뮤추얼펀드인 '인디펜던스 펀드'와 환매 수수료가 없는 선취형 뮤추얼펀드인 '디스커버리 펀드'가 다시 한번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2006년 4월 코스피가 1500을 돌파하자 인디펜던스·디스커버리 펀드는 누적 수익률 500%를 기록했고, 2007년 7월에는 두 펀드 모두 누적 수익률 700%를 넘어섰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래에셋에 위기로 닥쳐왔다. 2008년 한 해에만 30~40%의 손실이 났다. 특히 2007년 10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출시된 '인사이트 펀드'는 그룹의 대표 '흑역사'로 기록에 남는다. 인디펜던스 등 펀드 인기를 등에 업고 출시된 인사이트 펀드는 출시 한 달 만에 4조원이 넘는 시중 자금을 끌어모았지만 한때 수익률이 -60%를 넘기도 하는 등 굴욕을 당했다.
미래에셋은 2015년 12월 옛 대우증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1999년 12월 설립된 신생 증권사로 2015년 말 기준 자기자본 3조4300억원에 그치던 옛 미래에셋증권은 대우증권 인수를 통해 지난해 말 통합 미래에셋대우를 출범시키며 국내 자기자본 1위 6조8000억원의 초대형 증권사로 거듭났다.
[한우람 기자 / 최재원 기자 / 김효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