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신세계그룹이 발표한 1조원 투자 유치는 그룹 내 온라인 사업 역량 집중과 외부 자본 수혈을 통한 실탄 마련이 핵심이다.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는 온라인플랫폼 SSG.COM을 통해 비즈니스를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다른 회사 소속이라는 한계로 인해 본격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기 어려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이 온라인사업부를 물적분할한 뒤 합병을 통한 신설 법인 출범이다.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는 각각 온라인사업부를 물적분할 방식으로 쪼갠다. 물적분할이란 회사 특정 사업부를 분할해 기존 회사의 100% 자회사로 만드는 방식이다. 이후 물적분할된 양사의 온라인사업부를 합병해 신세계이커머스(가칭)라는 신설 법인을 설립하게 된다.
글로벌 투자자인 어피너티에퀴티파트너스와 BRV캐피털매니지먼트는 신세계이커머스에 1조원 이상을 투자하게 된다. 신세계이커머스는 기존 신세계그룹 온라인 플랫폼에 더해 추가 투자를 위한 실탄까지 얻게 되는 셈이다.
BRV는 페이팔에 최초로 투자한 기관투자가 블루런벤처스에서 출범한 글로벌 성장 투자 플랫폼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 맏사위 윤관 씨가 글로벌 대표를 맡고 있다. 어피너티는 홍콩계 사모펀드로 한국버거킹, 카카오, 교보생명, 더베이직하우스, 현대카드, 락앤락 등에 투자한 글로벌 사모펀드다. 삼성전자 출신 박영택 부회장이 동북아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사 관계자는 "신세계그룹은 견고한 오프라인 유통망을 바탕으로 신선식품 등 유통 측면에서 다른 이커머스 플랫폼을 압도한다"며 이번 투자건에 대한 기대감을 밝혔다. 공산품에 집중된 현재 이커머스 시장에서 신선식품 유통은 차별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이템 중 하나로 지목된다.
업계 관심사는 1조원 투자 자금 용처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신세계그룹이 물류망, 유통망 등 인프라스트럭처는 충분히 구축하고 있다"며 "추가 M&A에 쓰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커머스기업 쿠팡은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에서 1조원 투자 유치를 받아 '로켓배송'이라는 인프라 모델에 집중 투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는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신세계그룹과 투자자들이 이와 비슷한 오류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신세계발 M&A를 통한 시장 재편 가능성이 유력한 상황이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미국과 유럽, 중국 등에서 아마존과 알리바바 등 강력한 공룡이 시장을 장악한 것과 대비되게 수천억 원의 적자가 쌓인 상태로 출혈 경쟁이 지속되고 있다. 다만 신세계그룹은 매출 성장세와 함께 영업이익 손실 폭도 가파르게 줄어드는 등 온라인몰의 효율성을 빠른 속도로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손실은 이마트몰이 97억원, 신세계몰이 10억원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 같은 시장 전망에 대해 거래 관계자들은 신중한 모습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올해 말 독립 법인이 출범한 후에야 이번 양해각서(MOU)에서 약속된 투자가 본격 진행될 예정이어서 M&A는 내년 이후 좀 더 중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도 "G마켓을 제외한 대부분 국내 오픈마켓 기업이 최근 3~4년간 꾸준히 투자를 받았음에도 수천억 원대 적자를 쌓아 가는 상황인 만큼 신세계그룹이 3년 이상 기다리면 현재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매물이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거래에 정통한 관계자 역시 "아직까지 이번 투자 유치건은 MOU 단계로 구체적인 투자 금액, 지분율, 자금 용처 등이 정해진 바 없다"고 설명했다.
알리바바 사례에서 보듯 이커머스가 간편결제 시장과 결합해 급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신세계는 SSG페이로 간편결제 시장에서 유통 업계 1위로 관공서 등 다양한 제휴처를 확대하면서 가입 기반을 확장하고 있다. 이번에 투자를 단행한 BRV가 간편결제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페이팔은 물론 중국 온라인 대출업체 취뎬, 중국판 크레이그스리스트로 통하는 직거래 웹사이트 간지 등에 투자했던 경험이 풍부하다. 신세계그룹이 온라인몰과 결제시장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모델을 추구할 것이란 전
IB 업계 관계자는 "전략적투자자(SI)는 산업 내 영향력 확대에 관심이 많은 반면 PEF 등 재무적투자자(FI)는 이익 창출이 목표여서 서로 지향점이 다를 수 있다"며 "SI와 FI가 서로 얼마나 공조를 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지적했다.
[이한나 기자 / 한우람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