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라 원화 강세를 뛰어넘을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높은 반도체와 배터리 업종이 주목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두 업종 모두 인공지능(AI), 전기차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수혜가 예상돼 환율 악재에도 올해 실적이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29일 매일경제신문과 에프앤가이드가 최근 작년 4분기 실적을 발표한 수출 업종 10대 종목의 영업이익 전망치(컨센서스)와 실제 수치 간 차이를 집계해보니 1조8854억원에 달했다. 10대 종목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반도체),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자동차), LG전자(가전), LG이노텍(전자부품), 포스코(철강), LG디스플레이(디스플레이), 삼성SDI(배터리) 등이다.
증권사들은 이들 10곳의 4분기 실적이 나오기 전에 전망치로 총 24조6846억원을 제시했다. 그러나 실제 이들의 성적표는 22조7992억원에 그쳤다.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은 환율 요인을 과소평가했다며 뒤늦게 반성하고 있다. 실제 원화값이 급등하면서 주요 수출주의 작년 4분기 실적을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작년 9월 말 대비 12월 말 기준 달러 대비 원화값은 무려 7%(68원)나 급등했다. 이 같은 환율 변동으로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을 수출하는 국내 대형 수출주는 가격 경쟁력 하락으로 고전하게 된 것이다.
컨센서스와 실제 영업이익 격차가 가장 컸던 곳은 LG디스플레이다. 작년 4분기 영업이익 3188억원이 예상됐으나 실제 이익은 445억원으로, 컨센서스보다 86%나 낮은 수치를 내놓은 것이다. 전년 4분기와 비교해도 95.1%나 감소했다.
이 종목 연간 매출에서 액정표시장치(LCD)가 차지하는 비중은 90%인데 최근 중국 업체가 공급을 늘리면서 제품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공급과잉에 원화 강세까지 겹치자 LG디스플레이 이익은 속절없이 하락하고 있다. 올해 영업이익도 작년보다 47.4%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LG디스플레이는 스마트폰에 주로 쓰이며 LCD보다 수익성이 높은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중소형 OLED에 향후 3년간 10조원 투자계획까지 짜놨다. 문제는 이 같은 대규모 투자가 당장의 재무건전성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부채비율은 작년 3월 말 80.9%에서 9월 말 89.8%로 높아졌다.
미국과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판매 부진을 겪고 있는 현대차에 원화 강세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작년 4분기 현대차 3인방(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에 대한 증권사 컨센서스는 2조1843억원에 달했지만, 실제 영업이익 합계는 1조4103억원에 그쳤다. 예상보다 35.4% 낮은 수치다. 과거 현대차 한곳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이제 3곳이 힘을 합쳐야 달성할 수 있게 됐다.
현대차는 부채비율이 작년 9월 말 현재 143.3%에 달한다. 기아차도 100%를 넘겼다. 올해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지면서 재무 압박도 커지고 있다.
반면 반도체와 가전은 환율 악재에도 작년 4분기 실적 선방을 통해 올해도 실적 호조세를 나타낼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작년 4분기에 컨센서스(4조3020억원)보다 3.8% 높은 4조4658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영업이익은 16조7703억원으로 추정돼 작년보다 22.2% 늘어날 전망이다. 작년에 D램 반도체로 돈을 벌었다면, 올해는 낸드플래시(낸드)로 수익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은 컨센서스보다 5% 낮게 나왔지만 연말 지급된 대규모 성과급 영향이란 분석이 나온다.
올해
LG전자는 전망치보다 1000억원 낮은 4분기 영업이익을 신고했지만 올해는 전체 이익이 작년보다 24% 늘어난 3조원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문일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