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중국 인민은행은 달러당 위안화 기준 환율을 7.0326위안으로 고시했다. 전 거래일보다 0.16% 절하된 수치다. 중국이 9거래일 연속 달러화 대비 위안화 가치를 낮춤으로써 고시 위안화 환율은 지난 8일부터 4거래일 연속 달러당 7위안을 웃도는 '포치(破七)'를 지속했다. 위안화 약세와 홍콩 증시 하락 영향으로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은 전일 대비 각각 0.85%, 0.58%씩 하락했다. 중국 당국의 포치 용인은 지난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3000억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 예고와 5일 환율 조작국 지정에 대한 선전포고로 해석된다.
위안화 약세에 따른 원화 동반 약세가 점쳐지는 상황에서 우리 증시가 웃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원화 약세는 국내 증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수출주에는 호재로 인식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지금처럼 중국 경기가 둔화되는 국면에서는 위안화 약세가 중국의 구매력 약화에서 한국의 대중국 수출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오히려 부각된다는 이유에서다. 미·중 무역분쟁 격화로 중국 증시 낙폭이 미국보다 큰데, 우리나라와 중국 증시의 상관관계가 더 크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와 상하이종합지수 간 상관계수는 이날 기준 0.76으로 코스피와 다우존스 지수(0.26),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지수(0.21)보다 월등히 높다.
또 가파른 원화 약세가 나타난다면 환차손 우려로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자본의 이탈이 빨라질 수 있다. 위안화의 프록시(대리 통화)로 여겨지는 원화는 위안화 가치와 연동되는 경향이 있다. 한국 증시에서 거둔 달러 환산 수익이 줄어들면 외국인이 한국 증시에서 발을 뺄 공산이 커지고, 이는 우리 증시 수급상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위험 자산 회피 심리까지 겹쳐 신흥국 자산에 속하는 우리 증시는 자금 유출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위안화 가치가 달러당 7위안대로 떨어진 지난 5일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크게 부각되면서 금 가격과 엔화가 강세를 보이고 글로벌 주가와 채권금리는 크게 하락했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은 각각 2.56%, 7.46% 하락했다.
위안화 환율을 두고 미국과 중국이 줄다리기에 나서면서 위안화를 무역분쟁 강도를 가늠하는 척도로 삼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위안화 가치 하락이 지속된다면 미·중의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로, 위안화가 달러당 6달러 선에서 안정을 찾는다면 상호 간 신중한 태세를 보이는 양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시장에서는 위안화 가치의 절하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위안화 가치가 달러당 7.7위안까지 하락할 것이란 예상까지 나온다. 미·중 간 갈등 봉합보다는 양자 간 입장차 확대를 점치는 시각이 우세하다는 의미다.
불확실성이 지속된다면 정치적 지지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양국이 환율에 대해 신중한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서상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위안화가 추가 약세보단 달러당 7.1위안대 이상에서 안정화되고, 미국과 중국이 좀 더 신중한 태세를 보인다면 국내 증시는 반등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통화정책에서 위안화 흐름의 변곡점이 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원하는 바는 연준의 금리 인하이고, 연준의 금리 인하에 무역분쟁 심화가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준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무역분쟁 수위를 낮추는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이달 미국의 23~24일 잭슨홀미팅, 9월 1일 미국의 관세 부과 예고일, 그리고 9월 17~18일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등은 유의해 살펴볼 필요가 있는 이벤트"라고 설명했다. 지난 7월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통화완화에 그쳤던 연준이 비둘기파적 시그널을 보인다면
더불어 주목할 이슈로 홍콩 시위가 꼽힌다. 홍콩 이슈가 격화되면 위안화의 약세를 불러와 외국인의 매물 출회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14일 발표하는 중국 실물지표도 위안화 단기 향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홍혜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