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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판시장에 페이퍼백이 돌아오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페이퍼백의 무덤이었다. 해외의 출판사들은 일반적으로 고가의 양장본을 출간한 뒤 6개월~1년 정도가 지나면 저렴한 종이를 사용한 반값 안팎의 페이퍼백을 다시 출간하는 출판 사이클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출판시장은 싼 가격으로 사서 읽는 페이퍼백보다는 소장용 양장본·문고본을 구매하려는 독자들이 다수인 이유로 페이퍼백 시장은 사실상 없는 상태였다.
이런 출판계에 새로운 자극이 된 건 지난해 11월 시행된 개정 도서정가제다. 책값에 부담을 느낄 독자들을 공략할 새로운 ‘저가 상품’이 필요해진 것이다. 베스트셀러 1위를 질주하던 윤태호의 만화 ‘미생’(위즈덤하우스)은 11월에 곧장 보급판을 내놓았다. 판형을 줄이고, 박스포장을 없애 가격을 9만9000원에서 7만2000원으로 낮춰 출간해 정가제의 타격에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곧장 바통을 이어받은 건 세계문학전집이다. 더클래식은 올초부터 ‘안나 카레니나’‘월든’ ‘싯다르타’ 등의 고전 고전 페이퍼백을 4400원 안팎의 가격에 출간하고 있다. 세계문학전집은 기존의 번역된 타이틀이 충분히 비축돼 있어 페이퍼백 재출간에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 RHK도 스테디셀러 ‘화폐전쟁’을 특별보급판으로 올 초 출간하며 이 대열에 합류했다.
페이퍼백 출간의 효과는 있을까. ‘21세기 자본’의 보급판은 초판 3000부를 찍었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보급판 출간 직후 기존보다 판매량이 20% 정도 단기적으로 뛰었다. 다만 보급판 출간이후 양장본의 판매가 급격히 줄어서, 보급판을 계속낼지는 고민중이다”라고 말했다.
국내의 대표적인 페이퍼백 베스트셀러는 2004년 4만5000원의 양장본을 출간한 뒤, 2006년 1만8500원의 보급판을 다시 낸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사이언스북스)다. 보급판이 인기를 얻으면서 양장본도 덩달아 팔려나갔다. 판매부수 30만부 중 보급판의 판매비율은 70% 안팎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페이퍼백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초판의 소진이 힘든 작은 시장 규모였다. 초판 소진으로 제작비가 회수되지 않으니, 애당초 페이퍼백의 제작이 불가능한 것이다. 한 문학편집자는 “페이퍼백 시장의 주류는 장르소설인데, 장르소설 독자가 적은 것도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민음사가 2012년 장르문학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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