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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햇빛샤워 |
연극 ‘햇빛샤워’ 주인공 광자(배우 김정민)와 동교(이기현)는 이미 그 암흙 속에서 살고 있다. 그들의 현실은 벗어나기 힘들 정도로 암담하다. 두 사람 모두 고아다. 하지만 세상을 사는 방법은 대조적이다. 백화점 여직원 광자는 거칠고 공격적으로, 연탄집 양아들 동교는 비현실적으로 순수하게 살아간다.
그들의 처지를 상징하는 무대 한가운데는 싱크홀(지반 침하 현상)처럼 꺼져 있다. 연탄집 반지하 월셋방에 사는 광자의 침대가 그 안에 있다.
그는 비루한 삶을 끝내고 싶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매니저가 되기 위해 회사 유부남 과장을 유혹하고 물건을 빼돌리기 위해 물류 직원과 잠을 잔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쌍년’이라고 부른다. 고교 시절 이름을 놀리는 사람의 얼굴을 칼로 그어버려 감옥까지 갔다왔다.
어두운 뒷골목 같은 인생인데 이름은 역설적이게도 빛 광(光)자를 쓴다. 이 촌스러운 이름을 바꾸고 싶지만 전과 기록이 가로막는다. 하지만 그의 돌파력은 어마어마하다. 전직 형사에게 돈 대신 몸을 주고 개명에 성공한다. 아름다운 꽃봉오리라는 뜻의 아영으로. 과장과 불륜이 들통나 해고 위기에 처하지만 과장을 성학대범으로 몰아 매니저에 오른다.
그렇게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했는데 어이없게도 전혀 상관도 없는 동교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무너진다. 동교는 월급으로 받은 연탄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정도로 착하고 어리숙하다. 어찌보면 바보 같은 동교는 양어머니의 학대에도 꿋꿋하게 제 할 일을 한다.
외로워 사람이 필요했던 동교는 광자에게 고등어를 주며 다가온다. 늘 무시했지만 동교가 어머니 냄새를 느낄 수 있는 광자의 브래지어를 달라고 하자 동병상련을 느껴 선뜻 내어준다. 그런데 그 브래지어가 사단이 된다. 양어머니가 누구것인지 추궁하자 동교는 빌딩 옥상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갑자기 분노가 치민 광자는 양어머니를 칼로 치른 후 실갱이를 하다가 죽는다. 아무 상관도 없는 동교 때문에···. 마지막으로 “내가 이광자다, 내가 이광자다”라는 절규를 남긴다.
다소 당혹스럽지만 광자의 칼부림은 부조리한 사회를 향한 처절한 반항이다. 착하게 살아가던 동교의 목숨을 뺏아간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원망이다. 한 줄기 빛을 갈구했지만 희망은 없었다. 어두운 싱크홀 같은 인생에서 그를 꺼내줄 성공의 사다리는 없다.
막이 내리는 순간 연민과 답답함이 밀려왔다. 비타민D 부족으로 골연화증에 시달리는 광자가 반지하방에서 햇빛을 받으려고 애쓰는 장면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그는 두 손으로 빛을 끌어와 벗은 몸을 닦아냈다. 연극 제목 ‘햇빛샤워’와 맥이 닿는 장면이다.
등장인물들이 광자를 진술하는 극 전개 방식이 참신했다. 극작가이자 연출가 장우재 극단 이와삼 대표는 직설적인 언어로 불합리한 세상을 고발했다. 2013년 대한민국 연극대상을 수상한 ‘여기가 집이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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