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시카고 렉싱턴 호텔의 비좁은 방 661호를 배경으로 1923년, 1934년, 1943년의 시간차를 두고 벌어진 세 가지 사건을 옴니버스로 그려낸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는 참으로 독특한 연극이다.
‘카포네 트릴로지’의 독특함은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확인할 수 있다. 연극의 주된 배경이 렉싱턴 호텔인 만큼 출입통로를 일반의 호텔 복도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공연장으로 들어서는 출입구도 661호 방문 하나 뿐, 물론 비상계단이 있기는 하지만, 만약 661호 방문이 고장 나게 되면 배우들은 물론이고 관객들마저 꼼짝 없이 갇혀버리는 독특한 구조를 자랑한다.
661호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도 관객들은 이곳이 공연장인지, 아니면 남의 호텔에 몰래 보러 온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관객들을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출입구 정면에 놓인 침대와 100석 규모의 좁디좁은 공간이다. 어느 정도로 좁은가 하면 이미 공연을 보고 온 관객들 사이 “폐소공포증이 있으면 공연 보는 것을 자제하라”는 충고가 나올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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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김태형 연출 |
극에서 표현되는 년도는 다르지만, 세 연극은 20세기 전반 시카고를 주름잡던 갱 두목 알 카포네의 시대를 관통한다. 알 카포네의 기세가 제일 왕성했던 시기인 ‘로키’(1923년) 경찰에 잡혀 교도소에 있을 시기인 ‘루시퍼’(1934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석방 후 쇠락했던 시기의 이야기인 ‘빈디치’(1943년). 공간이라는 요소만 같을 뿐, 알 카포네의 통치시기를 다루더라도 풀어내는 이야기나 방식, 요소들이 전혀 다른 ‘카포네 트릴로지’는 그 어느 한 작품만 꼽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개성을 뽐낸다.
독특하고 색다른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의 총책임을 맡은 김태형 연출을 만나, 작품에 대한 해석과 연출의 의도에 대해 들어보았다.
◇ 텍스트 : 절반 이상을 바꾸다
‘카포네 트릴로지’는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2014에서 매진을 기록하며 전세계 언론과 관객의 찬사를 받았던 화제작으로 ‘벙커 트릴로지’의 연출가 제스로 컴튼과 작가 제이미 윌크스의 작품 ‘카포네 트릴로지’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라이선스 연극을 원작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다. 바로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절반 이상이 버려지고 수정되면서, 이른바 재창조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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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중 ‘로키’의 한 장면 |
“원작은 더 캐주얼하고 심플한 텍스트였다.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 있고 재미있었지만, 무대에 올리면서 주제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 공연되는 ‘카포네 트릴로지’는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갖지 못한 ‘빨간 풍선’의 이야기다. (여기서 ‘빨간풍선’은 굴레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 자유롭고 싶은 꿈, 극중 인물들이 갖지 못한 평범하면서도 일상적인 일상 등을 뜻하는 상징물이다.) 그러다보니 원작 공연에서는 없었던 신파나 씁쓸함, 우울함과 눈물들이 들어갔다. 최대한 그러한 것들을 만들기 위해서 애를 썼다. 디테일도 더 강화됐다. ‘로키’ ‘루시퍼’ ‘빈디치’ 각각의 장르들을 강화시킬 수 있도록 장면을 추가했으며, 같은 대사에도 다른 느낌이 들 수 있도록 조성했다. 서로 다른 세 개의 극이지만 이를 관통하는 공통적인 소품들도 추가했다. 빨간 풍선은 물론이고, 숨겨놓은 소품도 있다. 예를 들면 독약이라든지 쪽지라든지…”
‘카포네 트릴로지’는 독립적인 성격을 가진 세 개의 공연이 하나의 연극이 되는 작품이다. 이 말은 ‘카포네 트릴로지’의 연출가로서 총 3개의 작품을 올렸어야 했다는 것이다. 처음 자신만만하게 도전했던 김태형 연출가는 세배만 힘들 줄 알았는데, 그의 곱절인 9배 그 이상의 수고와 노력이 필요로 했음을 털어놓았다.
“힘들었지만 즐거운 작업이었다. 관객들이 호의적으로 공연을 봐 주시고, 생각했던 것보다 의도했던 잘 캐치하고 보고 계신 것 같아 기쁘다. 처음 관극했을 때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서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 좋았고, 하나의 공간에 세 편의 공연이 오른 다는 것 또한 신선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고 만족스러운 기회였고,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계속 재공연의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 공연장 : 진짜 호텔같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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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공연장 |
실제 호텔 방을 연상케 하는 ‘카포네 트릴로지’의 공연장은 꼼꼼한 고증과 실력자들의 손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었다. ‘카포네 트릴로지’의 카피 문구 중 하나인 ‘나쁜 일은 한 공간에서 일어난다’에 맞춰, 최대한 어두우면서도 우울한 도시의 분위기를 표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꾸며놓았다.
“실제 렉싱턴 호텔은 마피아가 머물던 호텔이다.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메모지에 렉신텅 호텔이라고 적혀 있으며, 작은 소품 하나하나 최대한 마피아의 느낌이 들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그 당시 마피아가 등장하는 영화나 자료들을 살펴보며 최대한 미국의 분위나 디테일을 살릴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로비를 호텔로 꾸민 것도 이러한 부분의 연장선이다.
“들어오는 순간부터 판타지를 두고 싶어서 로비를 호텔식으로 꾸몄으며, 최대한 호텔과 유사한 조명을 만들었다. 사실 애초에는 조금 더 과감하게 호텔리어들이 일하는 것처럼 매표하거나 하려고 했는데, 차마 거기까지는 못했고 대신 티켓을 드릴 때 호텔을 가면 카드키를 주지 않느냐. 숙박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 조금씩의 디테일을 살렸다.”
다음으로 신경을 썼던 것은 바로 조명이었다. 마주보는 객석으로 위가 아닌 정 가운데의 공간을 무대로 활용하는 만큼 관객들은 필연적으로 한쪽 면만을 볼 수밖에 없다. 어떤 자리에 앉든 필연적으로 볼 수 없는 공간이 발생하는 특징을 이용해 ‘카포네 트릴로지’는 관객들로 하여금 타인의 사생활을 훔쳐 보는 듯한 느낌을 연출했다. 그리고 이 같은 부분을 효과적으로 높인 것이 바로 조명이었다 .
“공연을 한층 더 완벽하게 만들어 준 것이 조명이었다. 조명 디자이너와 상의를 많이 했고, 최대한 빛(조명) 아래서 호텔 방을 훔쳐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 객석 : 불편함이 ‘카포네 트릴로지’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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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공연장 입구 |
객석의 불편하면 컴플레인의 대상이 되기 마련인데, ‘카포네 트릴로지’는 이 같은 불편함을 자신만의 특징이자 매력으로 바꾼 작품이다. 처음 계획된 ‘카포네 트릴로지’의 객석은 지금보다도 더 불편할 예정이었다. 지나치게 편하면 작품의 긴장감을 잃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 같은 객석의 불편함은 기획사에서 제제하고 조율하면서 지금의 쿠션과 등받이가 탄생했다.
“영국에서 공연된 원작의 객석은 더 불편하다. 원작 관객들은 등받이 없는 나무 벤치에서 공연을 봤다. 물론 몸은 불편하고 힘들 수 있지만, 최대한 지금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하게 하고 싶었다. 긴장감과 서스펜스가 있는 공연인데, 너무 집에서처럼 편하게 보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더 불편하게 하고 싶었다.”
‘카포네 트릴로지’는 대부분의 공연이 매진행렬이다. 입소문을 탄 이유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객석이 기껏해야 100석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원제 수용이 작은 공간이라서 시작부터 사람을 많이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커지지 않을 것 같다. 기껏해야 110명 정도. 너무 커지면 공연의 성격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공연의 성격 상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연도 아닌 것 같고, 난 지금보다 더 적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티켓 값이 저렴한 것이 아니어서 최대한 티켓 값만큼 보여드려야겠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 시간을 선택된 소수의 관객들에게 선물하는 그런 공연이 됐으면 한다.”
김태형 연출이 말하는 ‘카포네 트릴로지’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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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중 ‘루시퍼’의 하이라이트 |
# 로키
정말 미친척하고 그동안 배우들이 해보지 않던 코미디를 해보자해서 시작했던 것이 ‘로키’였다. 출연을 확정한 배우들 대부분이 슬랩스틱이나 소동극, 방문코미디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인데, 전혀 해보지 않았던 여기를 하게 함으로서 배우들에게 해방감을 주고 싶었다. 많은 배우들은 말도 안 되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그러면서도 단순하게 막장으로 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선명하게 정서적 울림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신경을 썼었다.
# 루시퍼
‘루피서’는 드라마가 제일 탄탄한 텍스트다. 세 사람의 심리묘사가 튼튼하고, 시대가 충돌하는 느낌이 살아있는 극이다. 배우들이 최대한 심리를 잘 끌고 갈 수 있도록했다가 격투 신을 통해 감정을 폭발시킬 수 있도록 꾀했다. 관객들이 극을 볼 때 폭발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심리적인 흐름을 치열하게 계산했다.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극의 주인공인 닉 니티에게 97년 IMF때 명퇴당한 중년의 아버지의 느낌을 받았다. 최대한 그 부분을 강조하고 싶었다.
# 빈디치
세 공연 중 스타일이 가장 명확한 공연이다. 스타일리시고 멋을 부리면서도 지나치게 진지하고 우스꽝스러운 매력이 있다. 영화 ‘씬시티’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다. 장르극으로 충실함에서 벗어나게 하면서도 의도를 전달하게 만들고 싶었다. 원작의 ‘빈디치’는 복수가 어떤 감정이고 어떤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설정이 없었는데, 나는 ‘빈디치’를 통해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극에서 말하는 죄책감은 주인공인 빈디치에게도 통하는 감정이다. 빈디치가 무의식적으로 모른 척 했고, 그로 인한 후회를 듀스를 향한 복수심으로 향하도록 꾀했다. 이러한 부분들이 관객들에게 잘 보였으면 좋겠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