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김진선 기자] “연극은 시대적 정신이다” “마음이 담긴 글은 힘이 있다” “법 앞에서 누워 있지 않고 이렇게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가끔 배도 침몰하기는 하지만”
촌철살인 같은 대사가 이어지고,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한 치도 눈을 뗄 수 없고, 치고 들어오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답답함이 밀려오고, 또 속이 뻥 뚫리기도 한다.
연극 ‘보도지침’은 실화로 바탕으로 한다. 1986년 전두환 정권 당시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 등이 월간 ‘말’지에 정부의 ‘보도지침’을 폭로해 국가보안법 위법 등으로 법정에 섰다가 9년 만에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 사진=벨라뮤즈 |
“사진을 찍어 달라”라고 힘 있는 말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지금 진공상태다. 영혼을 불어넣어 달라”라고 대사를 잇는다. 보통 극장에 들어서면 휴대폰을 꺼달라는 요청이 들리지만, ‘보도지침’은 도리어 사진을 찍으라고 하고, 등장한 배우 역시 “이 곳은 법정이자, 광장이자, 극장”이라고 말하면서 등장할 때 입었던 겉옷, 혹은 판사 복, 검사 복을 벗어 던진다. 마냥 법정으로만 보이는 무대를 향해, 관객들에게 눈이 아닌 마음으로 들여다 봐달라고 청한다.
‘보도지침’에 등장하는 검사와 변호사, 판사, 기자, 증인 등의 팽팽한 긴장은, 관객을 법정 앞에 앉은 배심원으로 만들어버린다. 배우들은 지그시 관객석을 바라보기도 하고, 쓴웃음을 짓기도 한다. 그런 배우들의 텅 빈 눈빛은 관객에게 무언의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보도지침’은 흔한 법정 드라마가 아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마냥 무겁지도 않으며, 드라마와 박자를 가미해 연극으로서의 재미도 살렸다. 이는 탄탄한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으로 가능했다. 조금도 벗어날 수 없는 대사의 속도는 숨이 막히다. 1986년이지만, 현시대에 빗댄 것처럼, 생생하고 지나치게 솔직한 느낌이라, 아슬아슬하기도 하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쉽게 말할 수 없고, 말하고 싶지만 균형을 잡아야 하는 이들의 모습은 권력 앞에서 굴복할 수 없고, 이것이 과연 변절인지 훈련인지, 혹은 지침인지 협조문인지, 기밀이라는 것이 과연 누굴 위한 것이냐고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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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마치 극 중 자주 언급되는 대사처럼, 대학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문구 ‘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다’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서도, 뮤지컬에서도 볼 수 있는 이 진솔한 현장은, 연극이기에 가능한 것으로, 무대를 법정, 광장, 극장이라 칭하고 관객 모두에게 현시대에 대해 고민하고, 또 저릿한 떨림을 전한다.
‘보도지침’은 오세혁 작가, 변정주 연출에 배우 송용진, 김준원, 김대현, 안재영, 이명행, 김주완, 에녹, 최대훈, 장용철, 이승기, 김대곤, 강기둥, 이봉련, 박민정 등이 출연한다. 오는 6월19일까지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공연된다.
김진선 기자 amabile1441@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