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김진선 기자] 뮤지컬 배우 에녹이 ‘브로드웨이 42번가’로 또 도전에 나섰다. 앞서 뮤지컬 ‘알타보이즈’ ‘모차르트’ ‘레베카’ ‘캣츠’ ‘카르멘’ ‘보니앤클라이드’ ‘쓰릴미’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연극 ‘보도지침’ 등의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난 에녹은, 대극장에서 소극장 공연, 대형 라이선스 작품에서 2인극, 최근에는 4년 만에 연극 무대에도 올라, ‘뮤지컬계 트랜스포머’다운 모습을 보였다. 무대 위에서 자유자재로 자신의 색을 낸다는 그의 모습은 트랜스포머와 적확했다.
올해 한국 초연 20주년을 맞은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뉴 제너레이션’(New Generation)이라는 슬로건을 내놓고 업그레이드 됐다. 에녹은 브로드웨이 최고의 미남 테너 배우 빌리 로러 역할을 맡았다. 앞서 맡았던 무게 있고 진중한 인물들과 다르게 능청을 떠는가 하면, 화려한 탭댄스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앞서 한 작품들의 인물들과 많이 다르죠? 저도 의외의 인물이라고 느꼈어요. 처음에는 낯설었어요. 쉽지 않더라고요. 인물에 대해 완벽히 파악하고 들어간 게 아니라, 춤출 수 있는 나이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출연을 결정했는데, 빌리가 이렇게 깨방정인 줄 몰랐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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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샘컴퍼니 |
“내성적이기도 하고 낯도 가리는 성격이에요. 멍석을 깔아주면 뭔가를 하긴 하는데, 제가 농담을 해도 다큐멘터리가 돼 버리죠. 재밌게 얘기를 못하는 편이라, 최근에 백스테이지 공연도 진행했는데, 즐겁게 하려던 게 그만 강연이 돼 버렸어요. 제가 선생님이 됐다면 학생들 다 재웠을 거 같아요.”
재밌을 얘기를 나눠도 진지한 분위기가 된다고 진중하게 말하는 에녹. 재밌고 유려하게 말하지는 못한다고 하지만, 그의 말속에는 상대를 당기는 힘이 있었다. 강의를 해도 이보다 재밌는 강의를 없을 법하다.
“선생님이 꿈은 아니었는데, 무언가를 쉽게 전하는 게 좋더라고요. 학창시절 때도 뭔가를 정리해서 말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정작 후배들에게는 무언가를 쉽게 말하려 하지 않는다. 선배랍시고, 어떠한 것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후배들이 자유롭게 하는 모습을 응원해주는 깊은 속내가 드러났다. 물론, 고민 상담이나 도움을 요청한다면 자신의 경험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고.
“후배들에게는 되도록 안 하려고 하죠. 선배랍시고 얘기하는 것보다, 후배들이 도움을 구하면,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내 기준에서 얘기해주려고 하죠. 제일 큰 스승은 자신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처럼 좋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서 옥석을 가리고, 선택해 자신의 것으로 취하는 것은 본인이니까요. 자신을 잘 볼 수 있으면, 필요한 것을 취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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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배우가 한 해 한 해 계획을 세우진 않을 거예요. 십 년 차이긴 하지만, 뭔가 달라졌다거나하는 것도 잘 모르겠어요. 작품하고, 또 연습하는 과정에 집중하는 거죠. 그러다 어느 순간 한 번씩 반추하는 시간을 갖기는 하지만 말이에요. 아직도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더 커요.”
에녹은 ‘도전’에 겁먹지 않는 천생 배우였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그 어려운 탭댄스도 8킬로 이상이 빠지도록 연습했고, 그의 땀방울은 무대 위 여유라는 결실을 보아 관객들의 눈을 빼앗았다. 발톱이 빠지는 고통도 있었지만, 도리어 웃어 보인다. 노력했기에 지을 수 있는 벅찬 미소였다.
“발톱이 반쯤 나왔더라고요. 처음에는 아팠는데 관리 잘하니까 이제 괜찮아요.”
게다가 원캐스트다. 체력적으로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몸 관리며 목 관리, 그리고 책임감이 보통이 아닐 것이다.
“혼자서 해내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임)혜영이가 한다고 하더라고요. 작은 체구에 꿋꿋하게 해내는 모습에 저도 해야겠다는 판단이 서더라고요. ‘나도 불태워 보자’라는 마음이었지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작품을 준비하면서 호흡도 맞추는 과정이 있었고, 변수가 최소화됐고 배역에 대해 알아가고 찾아가는 부분도 있었어요.”
도전을 멋지게 해내고, 관객들의 호응도 뜨거우니 에녹에게 ‘브로드웨이 42번가’는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체력적으로 쉽지 않아도, 밝은 기운으로 이끌어나갈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체력적인 부분이 쉽지 않아요. 그래도 밝은 작품이라 그런지, 비탄에 차있으면 금방 힘들텐데, 공연으로 하고 기분이 더 좋아지는 경향이 있어요. 긍정적인 마음으로 버틸 수 있어요.”
뿐만 아니라 에녹은 매일 만나는 ‘가족 같은’ 배우들에 대한 애정도 빼놓지 않았다. ‘아끼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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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샘컴퍼니 |
에녹은 그야말로 작품을 통해 진화하고 있었다, 한 작품 한 작품을 하면서 배우로서 성장하고, 내실은 보기 좋게 여문 듯 풍요로웠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여유나, 편안한 미소는 만들어내는 표정이 아닌, 분위기의 힘이었다. 허투루 한해 한해를 보낸
“나이가 들수록 역할 나잇대도 달라지는데, 이에 따라 성장해야 하는 부분도 있죠. 어렸을 때는 스스로를 다지고, 내실을 채우는 것에 집중했고, 장점으로 단점을 가렸다면, 이제는 본인의 실력을 다지고, 장점을 내세우기보다 배우답게, 배우로서 길을 가는 것이 맞는 거 같아요. 새로운 것을 채우면서 말이죠.”
김진선 기자 amabile1441@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