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저녁 수원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귀족적이고 온화한 오케스트라 선율에 1500명 관객은 숨을 죽이고 귀 기울였다.
밝은 이탈리아풍 서곡의 뉘앙스로 시작한 음악은 때로 비슷한 멜로디가 반복되며 단조롭고 잔잔한 감도 없지 않았지만 시종일관 귀엽고 우아한 매력을 잃지 않았다. 분위기나 구조 면에서 단숨에 인류 역사상 손 꼽히는 천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연상시키는 이 곡은 놀랍게도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의 작품이었다.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상임지휘자 성시연)는 이날 AI가 작곡한 음악을 인간이 직접 지휘하고 연주하는 21세기의 상징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국내 첫 시도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결코 흔치 않은 작업이다. 이날 연주된 ‘모차르트 이후의 교향곡(음악적 지능의 실험) 1악장’의 작곡가 이름은 ‘에밀리 하웰’. 미국 UC산타크루즈대학 데이비드 코프 교수진이 개발한 AI프로그램으로, 이미 2009년부터 여러 장의 음반을 발매한 프로 작곡가다. 에밀리 하웰은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특정 작곡가의 모든 작품들을 공부하고 분석한 뒤 그 작곡가의 스타일대로 화음, 박자 등 여러 요소들을 조합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공연 후 대기실에서 만난 성시연 지휘자는 “처음 악보를 봤을 땐 익숙한 멜로디들을 이어붙여 다소 껄끄럽다는 인상이었는데 막상 무대에 올려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호흡이 섞여들어가니 꽤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며 “리듬을 활용하는 방식, 각 악기들의 비중 등 모차르트만의 분위기를 잘 드러낸 곡”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클래식 입문자가 대다수였던 이날 관객들에게 에밀리 하웰의 작품과 모차르트 교향곡 34번 1악장을 나란히 익명으로 들려주고 어느 것이 더 아름다웠냐고 묻자 응답자 770명 중 35%인 270명 가량이 에밀리 하웰의 곡을 골랐다.
올해 초 AI가 그린 그림이 수천 달러에 팔리고 AI가 쓴 소설이 문학상 예선을 통과했다는 소식 등이 전해지면서 예술과 AI의 결합은 점차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슈가 되고 있다. AI 음악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20세기 중후반부터 기존의 것을 대체하려는 예술 전반 ‘아방가르드’ 사조의 일환으로 활발히 논의돼 왔다.
컴퓨터 알고리즘을 활용한 작곡기법을 선보여온 서울대 과학도 출신의 작곡가 김택수 씨는 “아직까지는 사람이 정한 규칙대로 음악을 만드는 수준이지만, ‘에밀리 하웰’의 발전을 볼 때 앞으로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컴퓨터의 힘을 빌려 작곡한 그의 새 교향곡 ‘Sum for Orchestra’ 역시 이날 경기필 연주로 초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일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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