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
대형 뮤지컬 제작사들은 이번 여름에도 웃지 못했다. ‘모차르트!’. ‘위키드’, ‘스위니 토드’, ‘노트르담 드 파리’, ‘잭 더 리퍼’ 등 어느 때보다 화려했던 라인업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인터파크 관계자는 “2016년 올 여름 뮤지컬 예매 시장은 작년 대비 5~6% 정도 성장하는데 그쳤다”고 답했다.
올 여름을 되돌아보면 대형 뮤지컬의 적수는 ‘폭염’이었다.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공연장을 찾을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국내 대형뮤지컬 기획사의 한 관계자는 “뮤지컬 공연장은 영화관보다 입지가 좋지 않고 티켓 값이 비싸 폭염으로 발걸음에 부담이 더 커진 것 같다. 영화관엔 오히려 사람이 늘었다는 걸 보면 폭염에 멀리 나가기보다 집 근처 피서를 선호한 게 아닌가 싶다”고 이번 여름 부진의 이유를 설명했다.
높아진 관객들의 눈도 이유 중 하나다. 경기 침체에 제작사들은 초연작 같은 모험보다는 안전한 재연작을 택했으나 오히려 그게 실이 됐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올 여름 뮤지컬 라인업을 “소문난 잔치들이 많이 열렸지만 먹을 건 많지 않았다”며 “재연 시 관객들은 업그레이드를 기대하는데 이전 공연과 크게 달라진 점이 보이지 않았다”고 답했다. 올 여름 뮤지컬을 올린 한 기획사 관계자 역시 “예전에 이름 있는 대형 뮤지컬이면 일단 믿고 보는 분위기로 어느 정도 관객이 확보 됐으나 요즘 관객들은 더 이상 그렇지가 않다.”며 “유명한 재연작들도 스타캐스팅이나 색다른 연출 등 새로움이 있어야만 관객들을 끌어 올 수 있다”고 답했다.
반면 대학로의 소극장들은 올 여름 환하게 웃었다. 신선한 시도들의 뮤지컬들이 젊은 관객들의 발걸음을 사로잡았다. 그 중심에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와 ‘라흐마니노프’가 있다. 둘 다 초연에 하나는 창작이다.
뮤지컬 ‘키다리아저씨’ 라이선스 초연작으로 근래 보기 드문 혼성 2인극이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와 오랫동안 식상하다고 외면 받아 온 정통 로맨스의 정공법이 먹혔다. 편지 형식의 독백으로 이뤄진 작품인 만큼 작은 소극장에서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점이 매력이라는 평이다. 제작사 달 컴퍼니 관계자는 “뮤지컬 팜플렛이 다 팔려 없어서 못 팔고 있다. 키다리 아저씨 엽서도 수량이 부족해 기다렸다 사는 관객분들이 줄을 섰다”며 인기를 실감했다. 올 여름 첫 선 보인 ‘라흐마니노프’도 소극장 창작 뮤지컬로 호평 속에 25일 막을 내렸다. 오케스트라 대신 이범재 피아니스트와 현악 4중주를 무대 위로 올린 실내악 공연 같은 신선한 뮤지컬이었다. 제작사 HJ컬쳐스에 따르면 라흐마니노프의 객석점유율은 96% 유료 객석 점유율은 80%에 달했다.
두 작품 모두 대형 뮤지컬의 화려한 앙상블 오케스트라와 무대 장치는 갖추지 못했다. 이는 역으로 비교적 적은 제작비(20억~30억원)라는 장점이 됐다. 대극장 뮤지컬보다 흥행 실패 부담이 덜해 새로운 스토리와 실험적인 연출을 선보일 수 있었다. 창작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의 경우 수익의 10~15%에 달하는 라이선스 로얄티를 아낄 수 있다는 점과 라이선스 원작에 구애받지 않고 관객들의 반응에 맞춰 무대를 그때그때 수정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했다.
3만~6만원 사이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티켓 가격도 성공요인이다. 뮤지컬에 입문하고자 하는 관객들의 진입장벽을 낮췄다. 새로운 작품에 목말라하던 뮤지컬 마니아층도 쉽게 도전해 볼만한 가격대기도 하다.
힘들고 지친 무더위와 불경기라는 어려운 시기에 이들이 선택한 ‘힐링’이라는 주제도 성공에 주역이다. 거대 서사나 화려한 쇼 대신 두 작품 모두 ‘따뜻한 말 한마디’에 집중한다. 고아 소녀 제루샤는 키다리 아저씨의 따뜻한 응원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한걸음씩 내딛으며 소설가로 성장해 간다. 라흐마니노프 역시 천재 음악가가 아니라 트라우마를 극복해가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한 인물의 내면에 집중한 작은 이야기가 관객의
라흐마니노프를 제작한 HJ컬쳐스의 한승원 대표는 “기존 뮤지컬 업계의 공식에서 벗어나 조금 멈춰 서서 뒤를 돌아 볼 수 있는 소재들이었다“며 ”진부하다고 외면 받아 온 이야기지만 오히려 지치고 힘든 사회에 따뜻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작품들”이라고 평했다.
[김연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