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세계적으로 28년간 장수한 과학 교양서였다. 고대 도구부터 최신 기계까지 움직이는 원리를 그림으로 설명하는 백과사전을 '무인도 생존용'이 아니라, 자녀들 학습을 위해 부모들이 앞다퉈 구매하면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종이사전이 사라져가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영광도 빛바랜 시대지만, 화려한 인포그래픽으로 무장한 백과사전이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의 저명한 사전 전문출판사 돌링 킨더슬리(DK) 백과사전 시리즈다. 방대한 사진 데이터를 수집해서 이를 바탕으로 책을 펴내는 DK시리즈는 5만 원 안팎의 고가에도 국내에서 중쇄를 거듭하고 있고, 1만 부를 넘기는 책도 나오고 있다. 비결은 양쪽을 펼치면 50㎝에 가까운 거대한 판형과 스마트폰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고화질 도판 수천점이 소장가치를 충족시킨다는 점이다. 자연사, 공룡, 인체, 무기, 자동차 등 특정 주제를 깊게 파고드는 정보량도 인터넷의 출처불명 지식과는 비교를 거부한다.
예스24의 판매 집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DK시리즈는 '도구와 기계의 원리 NOW'였다. 이 책의 주 독자는 30대 남성으로 31.1%에 달했다. 뒤를 이어 40대 여성(23.6%)과 40대 남성(22%) 독자가 많았다. 2위에는 해부도감을 방불케 하는 '인체완전판', 3위에는 '카북'이 차례로 올랐다. 사이언스북스에 따르면 두 책은 각각 1만6400부, 1만1800부가 팔렸다. 각각 의과학을 공부하는 학생 및 성인, 자동차 수집가 들이 주요 독자다. 카북은 130년 역사를 이끌어온 자동차 1200대의 도판을 수록했다. '하비북' 또는 '비주얼 가이드'로 분류되는 자동차, 무기, 항공기 등을 다룬 시리즈는 수집 등을 취미로 삼은 '키덜트' 독자가 많다. 5위에 오른 '우주대여행'(루덴스)의 경우 주독자는 40대 여성(32.4%)이 많았다. 자녀 교육 수요가 탄탄함을 엿볼 수 있다.
최근에는 440쪽에 달하는 '빅히스토리'도 출간됐다. '빅히스토리'의 창시자인 데이비드 크리스턴 교수가 참여한 이 책은 138억 년의 역사를 컬러 인포그래픽과 도판 700점을 통해 소개한다. 초판 3000부를 찍었지만, 초판만으로는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한다. 출판사측에서는 장기적으로 스테디셀러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DK시리즈는 높은 제작비와 엄격한 출판사의 요구로 인해, 국내에서 제작되지 않고 전세계 판본이 공동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 책도 해외에서 제작해 공수됐다. 사이언스북스 노의성 편집주간은 "바다, 인간, 지구 같은 넓은 범위의 자연과학 분야가 꾸준히 나가는걸 보면 과학교양 독자중에도 고급독자층이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1만 부 이상 팔린 '무기' 같은 경우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업계 종사자를 비롯한 성인 독자들의 수요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 국내 DK 백과사전 시리즈 판매 순위
1 도구와 기계의 원리 NOW/ 데이비드 맥컬레이 외
2 인체 완전판/ 앨리스
3 카 북 Car Book/ 자일스 채프먼
4 인체/ 스티븐 파커 외
5 우주대여행/ 헤더 쿠퍼 외
6 무기 WEAPON/ DK 무기 편집 위원회
7 자연사/ DK 자연사 제작 위원회
8 WOW! 지구/ DK 편집부
9 WOW! 인체/ 리차드 워커
10 우주/ 마틴 리스
*자료=예스24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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