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과 연이은 여진, 후쿠시마 원전 방사성 물질 누출 등 위험을 피하기 위한 피난 행렬이 한국을 향하고 있다. 일본인뿐 아니라 일본에 거주하던 외국인들도 한국행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일가는 최근 지진과 방사능 피폭 위험을 피해 서울로 피난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20일 재계 관계자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를 비롯해 막내딸 신유미 호텔롯데 비상임고문, 신동빈 회장 가족이 지난주 초부터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머물고 있다.
호텔롯데 관계자는 "시게미씨 여사와 신유미 고문, 그리고 신동빈 회장 가족이 지난주부터 롯데호텔에 투숙하고 있다"며 "이번주 호텔을 나와 서울에 있는 집으로 가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와 신동빈 회장 부인, 세 자녀는 일본 거주자다. 신 고문은 지난해부터 호텔롯데 도쿄사무소에서 근무해왔다.
이들과 달리 일본롯데를 책임지는 신동주 일본롯데 부회장과 가족들은 여전히 일본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 총괄회장 차남인 신동빈 회장은 지진이 발생한 지난 11일 일본 출장길에 나섰다가 16일 귀국했다. 이로써 일본 지진으로 인해 신 총괄회장 슬하 2남2녀 중 신동주 부회장 가족을 제외한 일가가 모두 서울에 모인 셈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 가족은 위험을 피해 한국으로 온 민간인으로 보면 된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일본 내 외국인들도 잇따라 한국을 향하고 있다.
미국계 기업 일본 도쿄지사에서 근무하는 루오 마틴 씨(47) 부부는 20일 오후 2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마틴 씨는 "23일 홍콩 출장이 예정돼 있었는데 당일 비행기 티켓을 구하기 힘들 것 같고 방사능 염려까지 겹쳐 미리 한국에 왔다"며 "한국에 머물면서 이틀은 편하게 쉴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일본에 머무르던 프랑스 기업인 등 교민 700여 명도 지난 17~18일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피신했다. 서울 그랜드앰배서더 호텔 관계자는 "일본 내 프랑스 교민들이 17일부터 호텔에 투숙했고, 비용은 주한프랑스대사관이 부담했다"고 전했다.
호텔롯데 관계자도 "일본대사관 쪽에서 교민 투숙을 위해 비용 등을 문의하는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고 전했다.
JW메리어트 서울 측은 "일본에 있는 미국계나 프랑스계 기업들 주재원이나 가족들 피난처로 한국행을 택하면서 객실 점유율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까지 탑승객을 실어나른 외국계 항공사 승무원들도 일본 대신 한국에서 머무르고 있다. 그랜드힐튼 서울 관계자는 "일본 관광객이 줄어든 부분을 외국계 항공사 승무원들이 채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지진 발생 후 일본에서 진행될 예정이던 비즈니스 행사가 한국으로 장소를 바꿔 열리는 사례도 있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일본 대신 한국에서 비즈니스 행사를 진행하려는 일본 내 다국적 기업에서 연회장ㆍ숙박 예약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인들 피난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20일 부산과 오사카를 오가는 카페리인 팬스타드림호(2만1350t)를 운항하는 팬스타라인닷컴에 따르면 18일 오사카를 떠나 19일 부산항에 도착한 팬스타드림호 승객은 모두 476명이나 됐다. 15일 부산항에서
주 3회 운항하는 이 배는 보통 출발 때와 도착 때 승객 수가 비슷한데 이번에 갑자기 부산으로 오는 승객이 크게 늘어난 것. 팬스타 측은 "늘어난 379명은 대부분 방사능 공포로 일본을 탈출한 사람들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정승환 기자 / 채종원 기자 / 인천 =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