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와중에도 좀 컸다고 생각했다. 검지만 꼿꼿이 세운 채 귓구멍에 정확히 집어넣는 아들 모습에 난 “어쭈, 다 큰 어린이처럼 행동하네”라며 기특하다고 말해줬다. 이리저리 귀를 후비며 혼자 놀기까지하니 아기가 열 감기를 앓느라 밤잠을 연일 설쳤지만 그래도 좀 살만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3일만에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기에게 중이염이 왔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의사선생님은 “엇, 주말 사이 무슨 일 있었나요? ”라며 다 나아갈 듯한 감기에서 중이염이 와 항생제를 바꿔 치료를 다시 해야한다고 했다.
육아 좀 한다는 선배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얘기 중 하나가 바로 아기가 중이염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청력 상실, 뇌 손상 등 중이염의 부작용을 함께 들었던 나는 아기를 목욕 시킬 때마다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철통수비를 했다. 하지만 9개월간의 보호망이 이렇게 허무하게 뚫리다니... ‘분명 괜찮아 보였는데...’
염증이 생겨 가렵고, 물이 찬 느낌에 손가락을 귀에 가져다 댄 것인데 그것을 보고 제지하기는 커녕 기특하다고 칭찬을 했으니, 난 도통 아는 게 없는 엄마라고 스스로를 원망했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내가 마음 먹은대로 혹은 뜻한대로 되지 않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좌절할 일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난 후부터는 벌써 몇 번째 좌절을 맛보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과 달리 잔병치레가 많기 때문이다. 또 일하는 엄마로서 아플 때마다 곁에 같이 못 있어준다는 생각에 죄책감까지 더해진다.
생후 5개월 무렵, 요로감염에 걸린 아기와 난 일주일 간 병원에 입원을 해야했다. 성인도 하기 힘든 각종 검사를 하기 위해 수면유도제까지 투여했다. 뭐든 보이는 것은 다 잡고 일어서는 7개월 쯤에는 ‘콰당’ 넘어지는 소리가 나 가보니 이마가 혹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이러다 핏줄이 터지면 어쩌나 걱정에 시달렸다.
이유식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원인모를 두드러기 반응을 보여 피부과로 직행했고, 입 주변에 생긴 물집 같은 게 자꾸 커져 발버둥 치는 아기를 간신히 붙잡아 병원에서 짜내기도 했다. 감기는 올 겨울 들어서만 벌써 3번째다. 한번 감기에 걸리면 일주일 약 복용이 기본이어서 어렸을 때부터 항생제에 너무 익숙해지는 것 아닌가 우려될 정도다.
애가 아플 때마다 엄마가 좌절감이나 죄책감 등의 감정에 취해 있는 일은 사실 말 못하는 아기의 고통 앞에서 사치다. 당장 고열이 나 숨쉬기조차 어렵고, 축 늘어지며 가래가 속에 그렁그렁해 잠 잘 때도 쌕쌕거리는 아기를 보면, 엄마는 강해져야만 한다. 애 아프다고 엄마까지 마음 약해져 발만 동동 구르고 있기에는 말 못하는 아기가 의지할 곳이 부모 밖에 없다.
마음이 자꾸 약해질 때마다, 체력이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안 그런 척, 강한 척 하다보니 정말로 스스로 견뎌내고 있음을 경험하기도 한다.
최근 아픈 아기를 돌보다 나 역시 40도 가까운 고열에 시달렸다. 친구네 집에 아기를 맡기고 남편과 함께 응급실에 가 수액을 맞고 왔다. 머리가 어지럽고, 그냥 누워 잠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지만 집에 돌아가 나에게 안기려고 손짓하는 아기를 막상 보니 어디서 나오는 힘인지 번쩍 아기를 들어 앉아 몇 시간을 같이 놀았다.
마음 강한 척 하는 것과 달리 워킹맘으로서의 죄책감은 떨쳐내기가 쉽지 만은 않다. 출근해서도 숨소리 거친 아기 모습이 눈 앞에 내내 아른거리며, 무엇보다 아픈 아기에게 내 몸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짜증을 폭발하고 나왔을 때 밀려오는 후회와 미안함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도 있다. 이 또한 엄마로서 극복해야 할 감정적 문제인데, 아직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는 못했다. 그저 아기가 조금이라도 병세가 나아지면 눈녹듯 사라질 감정이라고 위안할 뿐이다.
내가 어렸을 때 친정 어머니는 항상 강해보이셨다. 특히 내가 아플 때면 더욱 그랬다. 그래서 투정을 마음껏 부려도 됐고, 울어도 걱정이 없었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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