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인수합병과 관련해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되면 안 된다는 공정거래법 조항을 위반한 현대차에 대해 제재 절차가 늦어지더니 상당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SKT의 CJ헬로비전 인수를 놓고도 비슷한 얘기가 회자합니다. SK그룹과 최근 상생협약식을 했는데, SKT가 민감해하는 내용을 발표하는 게 부담이 되니 공개를 늦췄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요즘 세종 관가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가 정책 절벽인데, 공정위가 선거를 앞두고 대기업 특혜 시비 등이 나올 수 있는 이런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극도로 눈치 보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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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보 공정위'를 아시나요
- '봐'주는 공정위! 눈치'보'는 공정위! -
오늘은 공정거래의 날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공정위가 처리하는 업무는 참 다양합니다.
대기업을 비롯해 거대 경제권력의 이른바 갑질부터 총수일가의 사익 편취, 짬짜미로 불리는 카르텔에 대한 조사와 제재는 물론이고, 불공정 하도급 거래 개선과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각종 시정조치까지 올바른 시장경제를 위한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지요.
그만큼 기대감이 컸는데, 요즘은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실망스런 모습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진짜?' 경제검찰의 단면들이 곳곳에 배어 있네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이슈가 된 대기업의 인수합병과 관련해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되면 안 된다는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한 기업이 있었습니다.
법 위반이 명백한데 공정위의 태도가 좀 수상쩍습니다. 법 적용과 관련해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을 늦게 제공했다는 사실과 법 위반 사항을 빠르게 해소했다는 점에서 참작 요인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처벌이 하세월이네요.
처벌은 과징금을 매기고, 죄질이 나쁘다 싶으면 고발하면 끝나는 사안인데 미루고 또 미루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며 관련 사안을 몇 달째 계속 보고 있으니 공정위는 참 여유 있는 조직인가 봅니다.
그러다 보니 별별 얘기가 다 나옵니다. 얼마 전 현대차그룹과 공정위의 공정거래 협약식이 있었는데, 좋은 분위기에 현대차 제재를 하면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되니 좀 미루는 거 아니냐 이런 얘기들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SKT의 CJ헬로비전 인수를 놓고도 비슷한 얘기가 회자합니다. SK그룹과도 최근 상생협약식을 했는데, SKT가 민감해하는 내용을 발표하는 게 부담이 되니 공개를 늦췄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그런가보다 싶은데, 뒷얘기까지 더하면 상황이 더 그럴듯해 보입니다.
요즘 세종 관가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정책 절벽입니다.
현안 중 하나가 면세점 제도 개편안인데, 애초 지난달 말까지 정부 정책을 공개하기로 했었는데, 민감한 내용은 갑자기 쏙 빠졌습니다.
신규면세점을 추가로 허용하면 안 된다, 많이 해야 된다 등 서로 다른 이해관계 속에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목소리들을 높이고 있는데, 선거과정에서 대기업 특혜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들이 나오자 가장 민감한 신규면세점의 개수 공개는 총선 이후로 발표가 연기됐습니다.
공정위도 다르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SKT의 CJ헬로비전 인수도 두 대기업 외에 이를 반대하는 KT와 LG 여기에 콘텐츠 사용료 문제를 놓고 신경이 예민한 지상파 방송까지 연관되니 공정위의 눈치 보기가 극도로 심해졌다는 겁니다.
여기에 선거 직전이니 똑같이 대기업 특혜 시비
가 나오진 않을까 몸을 사리고 있다는 얘기인데요.
눈치 보기로 처리가 늦춰지면 손익계산상 누구한테 유리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봐'주기 공정위라는 오명 위에 눈치'보'는 공정위라는 얘기가 덧씌워지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의연한 경제검찰 공정위를 기대했던 입장에선 마음이 참 쓰립니다.
이전에 검찰을 출입했었던 기자로서 '진짜?' 경제검찰의 단면들을 다시 보는 듯해서 가슴이 답답합니다. 국민이 때때로 검찰에 가장 실망하는 모습이 바로 정치검찰, 눈치 보기 검찰, 표적수사 검찰인데 '경제검찰' 공정위의 지금 모습은 싱크로율이 상당합니다.
공정위의 한 고위관계자가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십몇 년 전 국민과 언론이 공정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전성기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그렇지 못할까요. 공정위는 스스로 그 답을 알고 있을 텐데요. 아니면 진짜 모르고 있는 걸까요.
정규해 기자 spol@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