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직장으로 정평이 나 있던 LG전자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명예퇴직 제도를 공식 도입했다. 스마트폰 G5 판매 부진에 따른 실적 악화와 올해부터 시행되는 60세 정년연장에 맞춰 조직 슬림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LG전자는 5일 고용노동부와 함께 명예퇴직 제도의 일환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Bravo My Life)’ 프로그램을 오는 9월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만 50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이 제도는 8월말까지 희망자를 접수받은 뒤 9월부터 1년간 진행된다.
프로그램을 신청한 직원은 9월부터 직전 연봉의 50%만 지급받는 대신에 현행 근무시간(주 40시간)의 절반인 주 20시간만 일하게 된다. 나머지 시간에는 인생 2막을 위한 창업교육이나 기술교육 등을 받는다. LG전자는 월 200만원 한도로 교육 등에 필요한 교육비와 활동비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프로그램 신청자는 줄어드는 임금 가운데 일부는 고용노동부의 ‘장년 근로시간 단축 지원금’ 제도를 통해 보충받는다. 이는 근로시간을 주 32시간 이하로 단축한 만 50세 이상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 전 임금보다 줄어든 임금의 50%를 지원해주는 제도로 1인당 연간 한도는 1080만원이다.
이에 따라 프로그램 신청자가 종전에 받던 급여를 100이라고 하면 50은 종전과 똑같이 회사에서 지급된다. 나머지 50 가운데 25는 고용노동부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받고, 또다른 25는 교육비와 활동비 명목으로 충당된다. LG전자 관계자는 “기존에 받던 연봉과 비슷하거나 약간 낮은 수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1년간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사람이 퇴직할 때에는 연봉 감축 전에 받았던 연봉 만큼의 창업지원급이 별도로 주어진다. 이는 창업 여부에 관계없이 프로그램 이수자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사실상 명예퇴직 위로금인 셈이다.
LG전자는 이미 2007년부터 만 55세이던 정년을 58세로 연장하며 매년 10%씩 연봉이 삭감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부터 정년이 만 60세로 늘면서 임금피크제만으로 인건비 부담과 잉여 인력 해소가 어렵다고 판단한 LG전자 측은 명예퇴직 제도 도입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최근 부진한 실적도 조직 슬림화와 비용절감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느끼게 한 요인으로 꼽힌다. 잉여인력이 되고 있는 장년 직원을 함께 끌고 가기에는 회사가 여유가 없는 것이다. 명예퇴직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브라보 마이 라이프’라는 용어를 통해 보다 멋있게 나갈 수 있는 길을 터 준 것은 이런 이유로 분석된다.
LG그룹은 전통적으로 ‘인화(人和)’의 경영이념 하에 조직원들을 가족처럼 여기며 끝까지 함께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고 특히 일부 사업부의 실적 악화로 회사 자체가 어려움을 겪게 되자 과감하게 구조조정의 칼날을 꺼내 들게 됐다.
LG전자는 올해는 제도 도입이 늦어 하반기에 처음으로 신청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매년 초 희망자를 접수받고 이 제도를 상설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연말 인사이동과 연초 승진 인사 등에서 누락된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을 터주겠다는 설명이다. 회사측은 명예퇴직 인원수를 정하지 않고 일단 최대한 많이 받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제도 도입에 대해 직원들은 사실상의 명예퇴직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사내게시판에는 이 제도를 비난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일부 직원은 “부서장으로부터 신청을 했으면 좋겠다는 권고를 받았다”며 “
이에 대해 LG전자 관계자는 “진작부터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싶은데 안정적으로 회사를 다니면서 하고 싶다는 수요가 있었다”며 “이들이 자유롭게 지원할 수 있는 제도이지 강제성을 띈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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