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연구직 이 모씨(34·여)는 육아를 위해 고민 끝에 회사에 사표를 냈다. 하지만 회사에서 아이가 학교를 간 오전 시간에만 일을 해보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 전일제 근무 대신 하루 4시간만 근무하는 ‘전환형 시간선택제’ 를 선택한 이 씨는 월급은 절반 수준으로 줄었지만 정부 지원금 20만원이 가계에 보탬이 됐다. 이 씨는 “전환형 시간선택제를 통해 경력단절 없이 육아와 직업을 병행할 수 있었다”며 “이 제도를 학위취득 등 자기계발에도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맞벌이 부부인 김신영 씨(38)는 지난 1일부터 시행된 ‘맞춤형 보육’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예전에는 전업주부들이 오후 3시쯤 맡겨둔 아이들을 대부분 데려가다 보니, 친구들과 떨어져 홀로 교실에 남겨진 아이 걱정과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보육교사 눈치 탓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맞춤형 보육 도입으로 전업주부는 하루 6시간 맞춤반으로, 김 씨와 같은 취업여성은 하루 12시간 아이를 돌봐주는 종일반으로 편성되면서 마음의 짐을 덜었다.
‘일·가정 양립’은 저출산 문제를 타개하고 여성 인력의 사회진출을 활성화하기 위한 복지 분야의 최대 과제다. 하지만 야근과 초과근무를 당연시하는 한국 문화에서는 지금까지 중요한 의제로 부각되지 못했다. 한국인의 연간 근로시간은 2057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세번째로 많은데다, 전체 육아휴직자 가운데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은 5.6%에 불과해 일·가정 양립을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가정 양립을 위한 여러 ‘맞춤형 복지’ 제도들이 시행되면서 긍정적인 신호들이 나타나고 있다. 2012년 53.5%를 기록한 여성고용률이 지난해 55.7%로 으로, 특히 경력단절이 가장 많은 30대 여성고용률은 같은 기간 56.9%까지 상승한 것이 단적인 예다.
7월 1일 시행에 들어간 맞춤형 보육은 보건복지부가 공을 들이고 있는 제도이다.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0~2세반 영아에 대한 보육서비스를 보육 수요에 맞춰 종일반과 맞춤반으로 나눠 운영하는게 핵심이다. 맞벌이 가구와 같이 장시간 어린이집 이용이 필요한 경우에는 12시간 종일반 서비스를 제공하고, 전업주부를 비롯해 가정 양육이 가능하다면 하루 6시간 맞춤반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맞춤반이라도 한달에 15시간까지 바우처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긴급한 보육 수요에도 대응할 수 있다.
당초 맞춤형 보육 도입을 둘러싸고 정부와 어린이집 단체들이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맞춤반 기본보육료를 6% 인상해 보육교사 처우를 개선하고, 두 자녀 가정도 일부 종일반 편입을 허용하는 방안으로 정리됐다.
장시간 근로관행을 개선하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지난 2013년부터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 중인 ‘전환형 시간선택제’도 일·가정 양립의 핵심적인 대책이다.
이 제도는 정규직이 시간선택제로 근무형태만 한시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해 준다. 정규직 신분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육아, 학업 등 시간선택제가 필요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예전 근무시스템으로 돌아갈 수 있다. 4대 사회보험 등 기본적인 근로조건도 모두 보장된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공공부문 근로자 30만15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환형 시간선택제 수요조사 결과 3만1659명(10.5%)이 3년 내 전환형 시간선택제를 활용하길 희망한다고 조사됐다. 실제로 지난해 전환형 시간선택제를 선택한 직장인은 556명이었으나, 올 들어 5월까지 총 579명이 신청해 이미 작년 한 해 인원을 넘어섰다.
고용부 관계자는 “시간선택제를 근로자가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법적인 권리로 부여하는 방안을 장기적인 과제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육아휴직에 대한 정부 지원도 늘고 있다. 특히 양성평등 확대를 위해 남성 육아휴직을 활성화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정부는 남성 육아휴직 비율을 현행 5.6%에서 올해말 6.7%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아빠의 달’은 남성 육아휴직 확대를 위한 대표적인 제도다. 현재 만 8세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를 둔 근로자는 남녀 각각 최대 1년간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
‘아빠의 달’은 같은 자녀에 대해 부모가 순차적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 두 번째 사용자의 석달치 급여를 통상임금의 100%(최대 150만원)까지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급여 지원기간이 1개월이었으나 올해 3개월로 늘렸다. 이와 함께 정부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남성 육아휴직 사용을 늘리기 위해, 육아 휴직 지원금을 중소기업에 대해 현행 월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인상하고, 사업장에서 첫 남성 육아휴직을 허용할 경우에는 월 4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여성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출산휴가 신청만으로 육아휴직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자동육아휴직제’도 강화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는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사업주 동의가 없어도 육아휴직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보완책도 마련하기로 했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도 일·가정 양립의 필수요소다. 지난해말 기준 국공립, 직장, 공공형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는 전체의 27.6%에 불과하다. 일단 복지부는 이 비율을 2025년 45%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 아래 올해 국공립과 공공형 어린이집을 각각 150곳씩 늘릴 계획이다.
[전정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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