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 했어야 하는 정기 인사도 못하고 있는 기업도 있는데 채용을 늘려서 확정하라니 답답하네요."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 주최로 열린 '고용노동부 장관 초청 30대그룹 CEO 간담회'에 참석한 한 그룹 부사장의 말이다.
삼성 등 주요 그룹이 뇌물죄로 엮일 위기에 처하는 상황 속에 이뤄진 이날 간담회는 침울한 재계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뭘 안 주면 안 줬다고 패고, 주면 줬다고 패고 기업이 중간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이런 상황이 참담하기 그지없다"고 토로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이 뇌물로 간주되는 상황까지 내몰리다보니 기업들이 위축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이어 "최근 여러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기업들이 많이 어렵다"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기업의 부담을 심화시키는 여러 입법 활동이 경제민주화를 명분으로 증가할 것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심지어 외교까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며 "기업이 거기에 영향받지 않고 어려운 경제적 상황을 어떻게 잘 헤쳐나갈 수 있는지 고민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특검은 삼성그룹을 시작으로 주요 그룹에 대한 수사에 나설 것임을 천명한 상태다. 특검에서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18개 그룹 모두에 대한 수사를 하지는 않겠다고 밝혔으나 대상기업 입장에선 마음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재계의 최대 현안이 특검에 대한 '방어'에 맞춰져 있다보니 투자와 고용 등 '공격' 전략은 세우지 못하고 있다. 5대그룹 중 연말 인사를 정상적으로 실시한 곳은 SK와 LG그룹 뿐이다.
이날 CEO 간담회 역시도 참석자의 숫자와 직급 등이 예년에 비해 대폭 줄었다. 경총은 연 1~2회 고용노동부장관을 초청해 30대그룹 사장·부사장이 참석하는 'CEO 간담회'를 개최해왔다.
지난해엔 4월 말 간담회에 26개 그룹이 참석했다. 참석자도 사장 10명과 부사장 10명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엔 30대그룹 중 20명에서만 참석했다. 사장은 2명(한화·두산), 부사장급은 8명에 머물렀다. 10대그룹 중에서도 LG, GS, 현대중공업은 불참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 상반기 채용계획 '확장적' 확정 △ 대중소기업 임금 및 근로조건 격차 개선 △일·가정 양립 실천 확대 등 5개 사항을 요청했다. 이 장관은 "올 1분기 300인 이상 사업장 채용 계획이 8.8% 감소할 것으로 나타나 청년 취업에 큰 고비가 될 것"이라며 "어려운 시기일 수록 고용에 힘써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 지금의 청년실업은 미래에 심각한 인적자원 기근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
그러나 참석한 재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10대 그룹 한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시킨대로 했다가 뇌물죄로 엮이게 생긴 기업들에게 정부가 나서서 고용 늘려달라고 압박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정욱·[고재만 기자 / 강영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