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들이 하자 있거나 저렴한 'B급 상품'만 찾아다니는데 포장업체 장사라고 잘 되겠습니까?"
23일 서울 성동구 마장축산물시장에서 만난 충남상회 사장 이 모씨(53)는 쌓여있는 포장비닐에 가슴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설 연휴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시장 상품의 포장·배달 서비스를 하는 이씨의 업체에선 명절 분위기를 느끼기 힘들었다. 가게와 창고에는 주인을 찾지 못한 포장재들만 수북했다. 설 대목 때문에 두 명이나 고용한 배달원은 할 일이 없어 시간만 보낼 뿐이다. 이 씨는 "아이스박스·바구니·포장지·선물가방 모두 떼온 물량 3분의 1도 안 나갔다"며 "상품 자체가 거래가 안 되니까 우리같은 포장·배달업체도 힘들고, 우리가 물건을 떼어 오는 포장재 생산 업체도 전부 힘들어졌다"고 울상을 지었다.
치솟는 물가가 소비자와 유통업계 전체를 침체의 수렁으로 몰아가는 '도미노 경기침체'가 나타나고 있다.
민족 대명절 설날이 다가왔지만 소비 심리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계란·채소·소고기 등 각종 농축수산물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소비자들의 지갑이 굳게 닫혔다. 심각한 소비 위축 속에 명절 대목을 노리던 전통시장 상인은 물론, 포장·배달업체까지 모조리 비상이 걸렸다.
소비자들은 가장 좋은 것만 골라서 올리던 차례상에 'B급 상품'을 올리기 시작했다. 서울 청량리 경동시장에선 흠집이 있거나 실하지 않은 과일, 제대로 영글지 않은 채소, 크기가 작은 생선 등 싸게 나온 물건들만 장바구니에 담기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규모가 큰 상가는 손님이 거의 없고, 조그마한 노점상에 10여명의 손님이 몰려있는 광경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주부 김 모씨(64·여)는 "전통시장인데도 귤 한 박스(10kg) 최상품이 3만원이나 하더라"라며 "작년 설에는 1만원대 귤 박스도 많았는데 지금은 품질이 떨어지는 것도 2만원대 초반이라 할 수 없이 시장 구석 노점에서 모난 귤을 샀다"고 밝혔다.
싼 물건을 찾아 여러 전통시장을 헤메는 '전통시장 투어'족까지 나타났다. 서울 중구 중앙시장에서 만난 김춘자씨(78·여)는 이날 설 차례상에 올릴 조기 6마리를 노점에서 1만원에 샀다. 엊그제는 청량리 경동시장에서 좌판에 나온 귤 한 바구니를 3000원에 가져왔다. 산적용 소고기는 그나마 고깃값이 싼 성동구 마장축산물시장에서 조금만 살 계획이다. 그는 "체감상 생선은 지난해 설과 비교해도 20%, 소고기는 10% 정도 오른 것 같다"며 "수입은 제자린데 물가는 오르니 전통시장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제일 싸게 나온 물건만 조금씩 사는 중"이라고 말했다.
마미영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정보국 팀장은 "평년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높은 물가 탓에 소비자들 사이에서 가격이 싼 'B급 상품'이 인기를 끄는 현상이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며 "'가성비(가격 대 성능비)'를 따지는 수준을 넘어 아예 '싼 물건'으로 차례상을 차릴 수밖에 없는 씁쓸한 모습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위축된 소비 심리 탓에 상인들은 유례없는 '개점 휴업' 상태에 빠졌다. 명절 대목을 앞두고 물건을 넉넉히 쌓아뒀지만 도통 팔릴 기미가 없다. 경동시장의 한 종합상회 사장 강 모씨(63)는 "지난해 설에는 일주일 전부터 과일 박스가 40~50개 넘게 나갔는데 올해는 설이 코앞인데도 겨우 10개 팔았다"며 "과일이나 채소값이 최근 한 달 들어서만 10% 이상 올라 선물용 과일 박스나 제수용 채소 모두 안 팔리고 재고만 가득 쌓였다"고 털어놨다.
특히 기본 가격대가 높은 축산시장은 김영란법 여파
[백상경 기자 /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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