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이 전국적 확산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일부 도매·유통상들이 물량 매집에 나서면서 소·돼지고기 가격이 출렁거리고 있다.
10일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당 1만5653원이었던 한우 1등급 지육가격은 지난 8일 현재 1만7242원으로 10.2% 급등했다. 돼지고기 도매가 역시 지난달 31일 ㎏당 4329원이던 것이 8일에는 4757원으로 9.9% 상승했다.
올해 국내에서 처음 구제역 의심신고가 접수된 것이 지난 5일인데 벌써부터 오르는 것은 사재기 영향 때문일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과거 구제역 사태 때 수요보다 공급이 많이 줄어 가격이 크게 올랐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중간 유통상들이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물량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에서 소·돼지 348만 마리가 살처분됐던 2010~11년 '구제역 파동' 당시 돼지고기 도매가가 두배가량 폭등했고 시중에 삼겹살이 '금겹살'로 불리며 유통물량 확보가 어려웠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구제역 의심신고가 접수된 보은군 탄부면 구암리의 한우농가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 혈청형 'O형' 구제역 바이러스로 확진됐다. 앞서 충북 보은 젖소 사육농가에서 발생한 것과 유형이 같은 'O형' 이고 약 1.3㎞ 떨어진 곳에 위치해 두 농가 사이에 전염병이 옮겨갔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로써 5일 이후 10일 현재까지 확진 건수는 충북 보은(2건), 전북 정읍, 경기 연천 등 총 4건으로 늘어났다.
업계 전문가들은 정부가 9일 오후 늦게 구제역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로 격상하고 가축시장도 일시 폐쇄했기 때문에 10일부터 소·돼지고깃값 상승세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한 축산업계 관계자는 "도축 후 판매까지 한우는 두달, 돼지고기는 한달 보름가량 중간유통상이 보관했다가 출하가 가능하다"며 "지금 물량을 확보해 놓으면 구제역 사태가 본격화됐을 때 물량이 부족한 시점에 출하해 이익을 볼 수 있는 구조여서 물량 확보에 나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 대형마트 정육 바이어는 "구제역이 확산 조짐을 보이자 대형 유통상들이 미리 물량을 다량 확보해놓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최근 일주일 사이 소·돼지고기 도매가가 오른 것은 이런 영향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돼지 농장으로의 구제역 확산 여부가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쇠고기의 경우 국내 유통 물량의 50% 이상이 미국, 호주 등 수입산이어서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지만 돼지고기는 90% 이상이 국산이어서 영향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소·돼지고기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자 정부는 가격 변동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자 수입 물량 확대를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날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물가관계차관회의 겸 범정부 비상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수입 촉진 등 쇠고기·돼지고기 등의 수급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응하기로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당장 쇠고기·돼지고기 공급량이 부족하지 않지만 소비 심리가 악화되면 수급에도 애로가 생길 수 있다"며 "관련 동향을 밀착 모니터링하고 실제 공급량이 부족하면 수급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축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 검토할 수 있는 방안에는 우선 농협 등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유통망을 통해 산지와 소비자 간 직거래 물량을 늘리는 것이 방법이다. 중간 유통 마진을 최소화해 가격 상승분을 흡수하는 것이다.
이밖에 농림축산식품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합동으로 중간 유통상 점검을 벌여 불합리한 편승 인상이나 담합을 단속하는 것도 검토중이다.
AI(조류 인플루엔자) 확산 당시처럼 수입산에 대한 할당관세를 적용하는 것도 방법으로 거론된다. 국내 시장의 25%가량을 차지하는 수입산 돼지고기와 60%를 점유하고 있는 수입산 쇠고기에 일시적으로 0%의 관세율을 적용해 전체적인 육류 소비자 가격 하락을 유도하고 소비자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다. 올해 미국산 쇠고기에는 24.0%, 호주산 쇠고기에는 29.3%의 관세가 붙는다. 돼지고기도 미국산에는 관세가 안붙지만 유럽연합(EU)이나 기타 국가에서 들여올 때는 각각 9.0%, 13.3%의 관세가 부과된다. 할당관세를 적용하면 관세율 만큼의 수입 가격 하락 효과가 발생해 소비자들이 조금 더 싸게 사 먹을 수 있게 된다. 기재부
한편 정부는 AI 피해 회복을 위해 스페인에서 산란계(달걀을 낳는 닭) 52만 마리를 수입할 계획이다. 마리 당 300원씩 항공운송비도 지원한다.
[서동철 기자 / 김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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