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지난 1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화장품 업체 카버코리아 본사에서 정윤정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를 만나 그의 새로운 도전에 대해 들어봤다. [사진 = 김수연 인턴기자] |
이처럼 수많은 수식어를 달고 다녔던 전직 스타 쇼호스트 정윤정 씨(41). 2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110억원 매출을 올리는 등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워 '1분에 1억원 파는 여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기네스북에까지 등재돼 판매의 여왕으로 불렸다.
![]() |
↑ 쇼호스트 시절 정윤정씨 모습 [사진 = 정윤정 SNS 캡처] |
그랬던 정씨가 얼마 전 돌연 16년간 몸 담았던 홈쇼핑 업계를 떠났다. 그는 지난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화장품 브랜드 A.H.C로 유명한 카버코리아에서 제품 개발자로 일하게 됐다고 밝혔다. 1999년도에 설립된 카버코리아는 지난해 4200억원 가량의 매출을 기록했다. 직원수는 300여명에 달한다. 홈쇼핑을 주요 판매 채널로 두고 있다.
홈쇼핑계의 정점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그가 왜 갑자기 이직을 하게 됐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에 지난 1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화장품 브랜드 카버코리아 본사에서 정윤정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를 만나 그의 새로운 도전에 대해 들어봤다. 정씨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고 해서 내리막을 걸으라는 법은 없다"며 "옆으로 점프해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는 케이스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 |
↑ [사진 = 김수연 인턴기자] |
- 쇼호스트였을 때 일이 재미있고 행복했지만 부담도 컸다. 내가 물건을 어떻게 판매하느냐에 따라 업체의 손익이 결정되지 않는가. 또 고객들은 나를 믿고 물건을 구매한다. 업체의 입장과 고객의 목소리 사이에서 어깨가 참 무거웠다. 일에 치이다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됐고 건강도 나빠졌다.
'고객을 기만하지 말자'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자'가 내 신조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다보니 나도 모르게 날카로워졌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1등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객을 기만하는 상황이 벌어질까봐 두렵더라. 일을 그만두고 쉬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 실제 소비자들에게 호되게 혼났던 적이 있다.
- 2013년 7월 방송한 한 화장품에서 금지성분이 검출됐고 고객들이 부작용을 겪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에는 '왜 나한테 다 뭐라고 하는 거지'라며 억울해했다. 나에게 모든 질타가 쏟아지니 회사 측도 당황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 일은 나에게 '행운'이다. 살다보니 좋은 게 다 좋은 것만은, 나쁜 게 다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우선 고객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자만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잡는 계기가 됐다. 정윤정이라는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도 알게 됐다. 고객들이 '나를 보고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인지했고 그때부터 내 이름을 내건 쇼를 만들어 진행하게 됐다. 또 공중파에서 내 이름이 거론되니까 좋든 나쁘든 결과적으로 내가 유명해졌지 않느냐. 하하.
![]() |
↑ 정윤정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 (쇼호스트를 그만두고) 주변에서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정말 미련이 남지 않는다. 화장품 제품 개발자가 하는 일은 쇼호스트 때와 일맥상통하다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소비자에게 상품을 소개하는 거다. 방송을 통해 보여주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연기자를 예로 들면 활동 무대가 드라마냐 영화냐 연극이냐 달라질 뿐 하는 일의 본질은 똑같다. 앞으로도 무대는 바뀔 수 있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들에게 상품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다.
그동안 '정점을 찍었으니 내려갈 일만 남았겠네'라는 말 역시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1등이라고 꼭 내리막만 걸으라는 법은 없다. 옆길로 점프하며 그곳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속적으로 지키는 방법도 있지 않겠는가. 내가 그런 사례로 남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 |
↑ 정윤정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 남들은 제가 큰 그림을 그리고 움직이는 줄 아는데 사실 그런 거 없다. 하하. 이것 저것 재는 성격도 아니다. 참 단순하다. 첫번째는 제일 먼저 제안을 해줬고 두번째는 대표의 한마디가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휴식기를 갖기로 마음 먹고 여행을 떠나려는데 현재 회사의 대표에게 연락이 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와서 좀 쉬시죠'라고 하는 거다. 보통 회사들은 '어떻게 이 직원을 써먹을까'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런데 와서 쉬라고 하니… 속으로 '아싸!'를 외쳤다. 그렇다고 설마 월급만 받고 진짜 쉬겠나. (대표가 저런 제안을 했던) 당시 무척 지쳐있어서 그랬는지 그냥 마음이 편하게 해주는 말 한마디가 고마웠다.
▶ 트렌드를 워낙 잘 예측해 '돗자리'라는 별명을 가진 것으로 안다.
- 감이 뛰어난 편이라 어떤 사람들은 나보고 '정말 뭐가 보이나'라고 묻기도 한다. 16년 홈쇼핑을 포함해 대학 때부터 23년 동안 방송이라는 한 분야에서 계속 일했다. 그동안 내가 만났던 사람들, 몸소 써본 상품들에 대한 기억이 데이터처럼 쌓였다. 그만큼 트렌드를 예측할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무엇보다 고객 중심으로 생각하면 된다. 고객 지갑에서 나오는 돈이 귀한 줄 알면 답이 나온다. 고객이 어떤 상품에 돈을 쓸 준비가 됐는지를 고민하고 돈이 아깝지 않은 물건을 소개하면 대박이 나더라.
![]() |
↑ [사진 = 김수연 인턴기자] |
- 눈을 현혹시키는 제품이 아닌 기본에 충실한 제품이 인정 받는 시대가 올 것이다. 화장품 하나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기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의학 기술이 매우 발달했다. 눈에 띄는 효과를 보고 싶다면 전문 기관에 가는 게 맞다.
먹거리만 봐도 그렇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건강한 땅에서 좋은 게 생산된다는 기본 원리에 초점을 맞춘 상품들이 주목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 가족들은 '바쁜' 정윤정 씨를 어떻게 생각하나.
- 다른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 가족들을 많이 걱정하더라. 그리고 나에게 함께 사는 친정 부모님, 남편, 두 아이들에게 고마워하라고 말해준다. 물론 가족들에게 매우 고맙다. 가족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정윤정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믿을 지 모르겠지만… 새벽까지 일한 후 사무실에서 자고 들어가거나 잦은 출장으로 떨어져 있었던 적이 허다했지만 단 한번도 남편과 다툰 적이 없다. 오히려 친정 엄마과 남편은 결혼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일을 하기를 원했다. 두 아이에게는 엄마가 왜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하는 지를 이해시킨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도 다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앞으로 20년은 더 일하고 싶다. 그때 쯤이 둘째가 대학교에 들어가 스스로 돈을 벌 수 있게 되는 나이다.
![]() |
↑ [사진 = 김수연 인턴기자] |
- 내가 써보고 진짜 좋은 물건을 사람들에게 알려줄 때 제일 행복한 것 같다. 단기적으로는 이번에 옮긴 회사에서 착한 화장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집안용품 중 좋은 것이면 그게 뭐든 알려주는 인플루언서(Influencer)가 되고 싶다. 거창한 게 아니다. 욕실 슬리퍼라든가… 소소한 물품이라도 상관 없다.
얼마 전 우연히 비행기 안에서 '조이'라는 영화를 봤다. 몇 년 전 이 영화 시사회 사회를 봐달라고 했었는데 잘 모르는 분야라 거절했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후 반성 또 반성을 하게 됐다. '이렇게 감동적인 영화를 내가 몰라봤구나'하는 후회가
이 사건을 계기로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좋은 물건이 얼마나 많을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좋은 물건을 만들었는데 판로를 찾지 못하는 영세 업체들이 정말 많다. 이 업체들의 대변인이 되고 싶은 소망이 있다.
[김지혜 에디터 / 영상 = 김수연 인턴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