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통상 당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개시 여부를 논의하기 위한 한미 FTA 공동위원회를 열고 본격적인 '기싸움'에 돌입했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와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2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를 개최했다. 한국 측 수석 대표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회의 시작 전 호텔 로비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이 첫 협상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협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측 수석 대표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방한하지 않고 미국에서 영상회의로만 참석했다. 김 본부장과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30분가량 비공개로 진행된 영상회의에서 각자 입장을 설명했다. 그동안 미국은 여러 차례 자국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한미 FTA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양국 통상 수장이 직접 한미 FTA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본부장은 영상회의를 마친 뒤 "우리 입장을 충분히 전달했다"며 "첫 협상은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이후 이어진 고위급 대면회의는 한국 측에서 여한구 산업부 통상정책국장과 유명희 FTA 교섭관이 맡았다. 정부는 한미 FTA가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며 실제 개정이 필요한 지 FTA의 경제적 효과를 먼저 분석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미국 무역적자의 원인이 한미 FTA가 아니라 미국의 낮은 저축률과 한국의 경기 침체로 인한 수입 감소 등 거시경제적 요인이라는 점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에서는 제이미어슨 그리어 USTR 비서실장과 마이클 비만 대표보가 참석했다. 미국 측은 한미 FTA 발효 이후 5년 동안 미국의 대한(對韓) 무역적자가 2배 증가한 점을 지적하며, 무역적자를 줄이는 방안으로 FTA 개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위는 양국 협정문에 따라 어느 한 쪽이 요청하면 열리게 된다. 이번 공동위는 한미 FTA 개정이 필요하다는 미국 측 요구로 열렸다. 회의 결과에 따라 한미 FTA는 본격적인 개정 협상을 시작할 수도 있고, 현재 협정을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다.
한미 FTA 개정 협상 시작 여부는 양국이 합의해야 가능하다. 그러나 미국 무역적자 원인과 한미 FTA의 경제적 성과에 대한 입장 차이가 커 개정 협상 개시에 조기 합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공동위 특별회기가 향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여러 차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이날 공동위 특별회기는 한미 FTA 개정 협상과 관련된 양국 간 첫 회의기 때문에 향후 논의 방향, 추가 특별회기 개최 여부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탐색전' 수준"이라며 "양국이 개정 협상에 합의한다고 해도 국회 보고 절차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실제 협상 개시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국이 개정에 합의하더라도 통상절차법에 따라 경제적 타당성 검토와 공청회 개최, 통상조약 체결 계획 수립, 체결 계획 국회 보고 등 절차를 거쳐야 개정 협상 개시를 선언할 수 있다. 미국 역시 협상 개시 90일 전 의회에 협상 개시의향을 통보하고, 연방 관보 공지와 공청회, 협상 목표 공개 등 절차를 마쳐야 한다. 이에 따라 실제 개정 협상이 시작된다면 빨라야 내년 초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동위 특별회기에서 한국이 상품수지에서 흑자를 본 것은 맞지만 미국 측이 강점을 갖고 있는 서비스수지에서 적자 규모가 확대되고 있으며, 무역통계에 잡히지 않는 미국산 무기 체계 수입 등을 고려하면 한국의 흑자 규모가 미국의 주요 교역대상국 중 큰 편이 아니라는 점을 제대로 설득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 미국의 대한 서비스수지는 FTA 발효 이전인 2011년 109억달러에서 2015년 141억달러로 흑자폭이 더욱 커졌다. 특히 한미 FTA에 따른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등 영향으로 지식재산권 사용료가 크게 증가해 2011년 29억9000만달러에서 2015년에는 58억9000만달러로 2배 가까이 뛰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상품수지는 232억달러 흑자지만 서비스수지에서 107억달러 적자를 본 것을 감안하면 실제 무역수지는 125억달러 수준이다. 여기에 작년에만 5조원 이상 미국산 무기 체계를 수입했기 때문에 실제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규모는 60억~70억달러 수준에 그친다.
한편 김 본부장은 이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한미 FTA는 우리에게 유리한 협정"이라며 "현행대로 유지하는 게 좋다고 본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협정을 개정하려는 것 같은데 우리 정부는 현행 유지와 개정 중 어느 것을 원하나"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어 김종훈 자유한국당 의원이 "미국 측이 한미 FTA 재협상을 하자고 요구하고 있는데 결론을 안 내릴
김 본부장은 "현재는 한미 FTA 재협상을 시작한 게 아니고 공동위 특별회기를 열어 재협상을 할 것인지 검토를 하게 된다"며 "오늘 열린 공동위는 미국 측에서 특별회기를 갖자고 해서 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재만 기자 / 석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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