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나쁘고 교통이 혼잡한 시내 한복판에서 산책하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될까. 도심에서 걷기운동을 하면 건강에 해로우니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6일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과 미국 듀크대 연구진은 "오염된 공기가 심혈관·호흡기에 미치는 악영향은 걷기운동의 긍정적 효과를 상쇄하거나, 심지어 능가한다"고 밝혔다. 건강한 사람이든 만성 심혈관·호흡기 질환을 가진 사람이든 오염이 심한 거리에서 걸어다니느니 실내에 있는 게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이 같은 내용의 논문은 의학 권위지 '더 랜싯'(The Lancet)에 실렸다.
연구진은 실험에 참여한 만 60세 이상의 노인 119명에게 교통체증이 심한 '옥스퍼드 스트리트'와 탁 트인 공원 '하이드 파크'에서 매일 대낮에 2시간씩 걷도록 주문했다. 그리고 산책 전후로 폐활량, 혈압, 혈류량 등을 측정했다. 기침, 가래, 숨참, 재채기 등 호흡기 증상도 함께 기록했다.
실험 결과, 똑같이 야외에서 2시간을 보냈더라도 공기가 맑은 하이드 파크에서 걷는 경우와 오염이 심한 옥스퍼드 스트리트에서 걷는 경우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뚜렷이 달랐다. 하이드 파크에서 산책한 뒤에는 폐활량이 유의미하게 좋아졌으며, 이 같은 긍정적 효과가 대개 24시간 넘게 지속됐다. 동맥이 얼마나 딱딱하게 굳었는지를 나타내는 맥파 전달 속도도 건강한 사람과 호흡기 환자에서 24%, 심장질환 환자에서 19% 감소해 상태가 호전됐다.
그러나 공기가 나쁜 옥스퍼드 스트리트에서 산책한 뒤 결과는 정반대였다. 건강한 사람의 폐활량은 산책 직후 잠시 증가했다가 다시 원상복귀됐고, 맥파 속도는 오히려 7% 높아졌다. COPD 환자들의 경우는 기침, 가래, 숨참, 재채기 등 증상이 악화됐고, 허혈성심장질환 환자의 동맥은 더욱 경직됐다.
연구진은 이 같은 차이가 대기오염물질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옥스퍼드 스트리트의 경우 디젤 자동차 등에서 나오는 검댕과 초미세먼지가 심혈관·호흡기 건강을 악화시켰다는 설명이다. 논문 교신저자인 임페리얼칼리지런던 호흡의학과의 판 청 교수는 "원래 걷기운동은 기도를 열고 혈관을 팽창시키는 등 건강에 이롭지만, 오염된 지역에서 하면 효과가 떨어지고 대기오염물질이 폐 등에 들어간다"며 "노인이나 만성질환자 등 많은 사람들은 자주 할 수 있는 운동이 걷기밖에 없는데, 공해를 줄여 어떤 환경에서도 운동의 이로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김윤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