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너는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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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기적’은 김태원 자신. 천재적인 음악가, 하지만 가난, 대마초, 건강악화, 팀 내 불화 등 고난의 연속이었던 그는 사실 지금의 대중들에겐 매우 낯선 존재였다.
‘배고픈 록커’, ‘비주류’, ‘암흑 속 어딘가…’ 의 이미지가 강했던 그가 연예계 등불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알 지 못했다.
우연한 계기로 대중은 ‘김태원’ 이라는 한 음악가를 알게 됐고 그의 유머 속에 점점 빠져들었다. 그의 유머속에는 음악이 있었고 인생과 철학이, 고통이 느껴졌다. 소위 ‘잘 나 가는’이들 보다는 ‘잘 나갈 수 있는’ 이들을 먼저 생각하는 그였다. 결국 그는 힘겹게 연예계 걸음마를 시작하려는 많은 음악가들에게 희망이 됐다.
김태원은 1965년 발명가 아버지와 미모의 어머니 사이에서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당시 운송업과 자전거 대여업을 운영하던 재력가 할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라는 듯 했으나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사업 실패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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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례 실력파 보컬을 거쳐 새로운 보컬 이승철을 영입,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 등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그러나 영광도 잠시 1987년 대마초 사건으로 인해 2집 앨범은 실패했고 각종 수난기가 시작됐다. 이후 어려움에 빠져있던 부활 김태원에게 이승철은 결합 제의를 한다. 14년만에 재회한 이들은 ‘네버 엔딩 스토리’로 또다시 대박을 터트렸다.
소문난 음악가지만 대중적이지는 못했던 김태원, 그랬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장르 ‘예능’ 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 독특한 화법의 김태원을 눈여겨보던 김구라의 예능프로 출연 제의에 따라 2008년 ‘라디오스타’에 출연, 방송 직후 화제를 몰며 ‘예능 늦둥이’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남자의 자격’과 ‘위대한 탄생’ 등을 통해 연예계 위대한 ‘멘토’로 우뚝 섰으며 각종 건강이상에도 불구 그는 연일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는 누군가의 ‘정신적 지주’ 였지만 우리들의 영웅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적을 믿은 그였기에 현재 김태원은 진정한 연예계 ‘미라클’ 이 됐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기자 kiki202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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