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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광주의 한 청각장애학교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 5년 동안 교장과 교사들이 장애 아이들을 대상으로 상습적으로 성폭행·추행, 학대를 저질렀다는 실제 이야기다.
영화 ‘도가니’(감독 황동혁)는 원작인 작가 공지영씨의 동명 소설과는 또 다른 충격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글로써 전달된 아이들의 피해 상황과 아픔이 시각적 장치를 통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안개 자욱한 무진. 대학 은사의 추천을 받아 청각장애 학교 ‘자애학원’에 미술교사로 부임하게 된 인호(공유)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시골길을 달린다. 서울에 남겨두고 온 딸 때문인지 생각과 상처가 많은 듯한 인호지만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밝게 다가가려 한다.
하지만 인호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과 행동은 이상하다. 음울하고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학교 풍경도 낯설기만 하다. 연두(김현수)와 유리(정인서)는 불안한 눈빛으로 도망치듯 인호를 지나친다. 민수(백승환)는 생활지도교사에게 얼굴에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고 걷어차이고 있다.
인호는 학교발전기금 명목으로 5000만원을 요구하는 행정실장과 피와 멍투성이가 된 아이들의 얼굴과 몸을 보고 이상함을 느낀다. 이내 자애학원 교장과 쌍둥이 동생 행정실장, 그리고 생활지도교사가 아이들을 성폭행, 추행했다는 일과 직면한다.
영화는 줄곧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로 125분을 달려간다. 충격적 실화를 다룬 내용이라 아이들의 아픈 과거를 상상 이상으로 그려내긴 하지만 신체가 자극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조심스럽게 걷어내며 정성을 다해 노력한 흔적이 장면 장면마다 드러난다.
종반 경찰의 물대포 장면에서 감정을 과하게 전달하려 했다는 감이 없진 않지만 대부분 감정적 폭발을 일으키게 만들려 하지 않는다. 아픔과 분노를 관객에게 조심스럽게 전이시키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점이다. 물대포 장면이 너무나 슬픈 상황과 감정의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넘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진실을 밝혀내려는 교사 인호와 인권센터 간사 유진(정유미), 그리고 피해 아이들이 가해자를 상대로 벌이는 법정 싸움은 관객을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만든다. 지난한 싸움은 지루하지 않다. 덮인 진실을 하나씩 벗겨내며 승리를 향해 작은 희망을 발견하고 응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학교의 비리 고발과 넉넉지 못한 가정의 생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공유, 정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정유미, 아역 배우들의 연기는 뛰어나다.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가해자들의 캐릭터 연기도 마찬가지. 이들은 한데 어우러져 최고의 조합으로 시너지 효과를 충분히 발휘, 영화를 빛나게 만든다.
영화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며 주먹을 쥐게 한다. 전관예우(전직 판사 또는 검사가 변호사로 개업해 처음 맡은 소송에 대해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특혜), 돈으로 합의를 종용하는 일, 공무원들의 안일한 행정처리 등 부조리가 횡횡한 현실은 주인공들을 거대한 벽 앞에서 한숨 쉬게 만들어 버린다.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지만 음식을 먹다 고무줄을 씹었을 때의 기분 나쁨이랄까. 관객은 다행히 고무줄을 삼키지 않고 질겅질겅 씹다가 그 기분 나쁨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아이들의 아픔에 안타까움을 억누를 수 없을 것 같다. 주변의 우려 속에서도 절제의 미덕과 폭로의 시각을 가지고 사건을 전달한 감독과 배우, 스태프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영화는 소설과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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