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작단계부터 촉박하게 시작된 ’해품달’은 캐스팅 과정도 녹록치 않았다. 양명 역에 최종 낙점된 정일우의 경우, 출연제안을 받았을 당시 tvN ’꽃미남 라면가게’에 한창 몰입해 있었다.
집중력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정일우지만, 라면가게를 벗어나 잠시 숨 돌릴 틈이 생기면 ’해품달’을 떠올리곤 했다. 지금까지 해보지 못했던 도전이라는 측면이 강하게 작용했다.
드라마 촬영을 모두 마치고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 만난 정일우는 "’해품달’의 양명은 도전이었던 캐릭터였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정일우를 수식해 온 밝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조금 어둡고 무겁게 만드는 최초의 시도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원작에서 굉장히 불쌍한 친구로 나오는데, 드라마에서는 양면성이 있더군요. 내가 해서 너무 어둡지만은 않게, 밝은 친구지만 어두운 면도 있구나 하는 걸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죠. "
캐릭터에 대한 확신이 잡히지 않아 출연을 망설이기도 했지만, 그런 정일우를 잡아준 건 김도훈 PD와 진수완 작가였다.
"감독님과 호흡이 굉장히 잘 맞았어요. 감독님이 꼼꼼한 편이신데, 저도 그렇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특히 잘 맞았습니다." 촬영 막바지, 김PD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일우에 대해 "집념과 근성이 보통이 아니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 |
"제일 즐거웠을 땐 연우와 자치기 놀이를 할 때였어요. 촬영 자체도 즐거웠지만 양명이 가장 해보고 싶고, 그렸던 게 그런 순간이 아닐까 생각해요. 반면 제일 슬펐던 건 아무래도 죽을 때였죠. 그런데 사실 제 입장에서는, 그렇게 슬픈 장면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의외였다. 그렇다면 양명일우가 꼽은 가장 슬펐던 장면은 어떤 대목이었을까? "훤과 칼을 서로 겨누면서 오해하고 왕의 여자를 데려간 것은 역모라고 얘기하는 장면이에요. 사실 양명은 지켜주러 간 거였는데. 사랑하는 동생과 사랑하는 여인 사이에서 굉장히 갈등하고 아파하는 모습이 아프게 느껴졌어요."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양명의 임팩트가 가장 살아난 장면은 마지막회 반란군을 제압하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씬이었다. 유혈이 낭자했던 양명의 마지막 순간, ’죽어야 사는 남자’ 정일우의 연기력 ’포텐’은 결국 터졌다. 원작 그대로의 결말로 양명은 죽었으나 정일우는 비로소 살아났다.
정일우는 "사랑하는 동생을 그리고 여인을 지켜주려 했고, 모든 것을 감수하고 죽는거라 생각하니. 촬영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임팩트가 굉장히 강했다"고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김수현, 송재림과 함께 한 운명의 장면에 대해서는 "정말 호흡이 잘 맞았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당시 장면에서 정일우는 물론, 김수현은 눈물샘이 터진듯 했다. 진짜 죽어가는 듯 붉게 충혈된 채 흐르는 양명의 눈물과 그런 양명을 무력하게 바라보며 애통해하는 훤의 눈물에 안방극장은 그야말로 눈물 홍수를 이뤘다. 정일우는 "수현이랑 제가 눈물이 둘 다 많은 것 같다"며 뒤늦게 배시시 웃었다.
![]() |
’해품달’은 끝났지만 정일우는 이제 시작이다. 2007년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혜성처럼 떠올랐던 스타였지만 이젠 진정한 연기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토대를 묵묵히 다지고 있다. 어쩌면 ’해품달’은 정일우의 지난 4년여의 시간이 준 선물인지도 모른다.
"’하이킥’이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는데, 이번에 또다른 제 대표작이 생긴 것 같아요. 준비기간이 짧아서 불안했던 건 사실이지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 했고, 이번 작품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한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그동안 밝고 건강한 느낌이 정일우를 설명하는 주요한 이미지였다면, 앞으로는 보다 강하고 남자다운 느낌이 나는 캐릭터에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라면가게’를 통해서는 편안한 향이 나는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 향이 좀 더 진해진 것 같아요. 편안함을 놓고 가진 않지만, 이젠 어떤 캐릭터가 저와 잘 어울리겠다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양명이라는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그가 다시 만날 작품과 캐릭터를 굳이 특정 이미지로 한정지을 이유는 더 이상 없어 보인다.
"’해품달’로 칭찬을 많이 받아 그런지 자신감이 생기긴 했는데요, 아직은 제가 연기를 잘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저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매 순간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 한다면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강영국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