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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 삼아 하는 얘기라곤 하지만, 엄살이 아니다. 실제로 영화로 무대를 옮긴 이후 그가 맡았던 역할은 동티모르와 호주 사막을 횡단하고, 뉴질랜드 허허벌판을 구르는 거친 일들이었다.
“출연료가 남들보다 저렴해서”라고 털털하게 웃지만, 이제는 고종황제건 건달이건 뭘 맡겨도 안심이 되는 배우로 통한다. 2009년부터 무려 8편의 영화에 쉼 없이 출연했고, 올해만 벌써 세 작품째다.
그런데 이번엔 ‘간통’이다. 아직도 독립영화의 향기가 배어있는 그와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소재. 가깝게는 ‘세븐데이즈’, ‘작전’ ‘혈투’ ‘의뢰인’ ‘가비’ 등 전작 속 캐릭터와 비교해봐도 “왜?”라는 물음표가 뒤따른다.
최근 삼청동의 카페에서 만난 박희순은 “흥행 한번 해보고 싶어서”라고 직접적으로 답했다. 흥행에 대한 갈증과 고민이 생각보다 깊은 듯 보였다. “저예산 영화를 마음 편하게 오가려면 일단 흥행 배우가 되는 게 급선무”라는 것이다.
“‘맨발의 꿈’이 참패했을 땐 정말 견디기 어려웠죠. 마침 (박)용하도 떠나서 그대로는 돌아버리겠다 싶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체코와 오스트리아 빈으로 훌쩍 여행을 떠났어요. 돌이켜보면 그동안 너무 진지한 쪽으로만 가려 하지 않았나 싶어요. 이제는 관객과 맞닿아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간기남’(간통을 기다리는 남자)은 스릴러라는 줄기 위에 코믹과 멜로, 에로가 꽃을 피웠다. 작품성 보다 성인용 오락영화에 무게를 뒀다. 박희순 또한 “킬링타임용 영화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스릴러란 소재에 블랙 코미디스러운 분위기에 끌렸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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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순의 변신은 단연 돋보인다. 치밀한 두뇌회전으로 사건을 풀어나가는가 하면, 허당기 있는 형사 ‘선우’로 종횡무진 스크린을 누빈다. ‘선우’는 간통전문 형사 역을 맡아 현장을 덮칠 준비를 하지만, 정작 자신이 미망인 김수진(박시연 분)의 팜프파탈 매력에 푹 빠지고 만다.
“완벽할 것 같지만 오지랖 넓고 허술한 캐릭터”, ‘세븐데이즈’ 이후 형사 역을 또 맡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여러모로 ‘간기남’은 그에게 또 한 번 터닝포인트가 될 작품이다. 관객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든 작품일 뿐 아니라, 상대 역 박시연과 대담한 러브신도 선보였다. 그렇게 ‘센’ 정사신은 처음이라면서도 빗속 키스신과 빈소 정사신은 리얼하고 화끈하다.
“아, 그거요? 박시연씨 결혼발표 난 후 촬영한 장면들이죠. 안 그래도 부담이 많았는데 ‘날 받아놓은 사람하고 이걸 하라니’ 정말 난감하더군요. 감독님은 ‘좀 더 야하게’ ‘좀 더 격렬하게’라고 외치지 죽겠는 거예요. 시연씨가 웬만한 남자들보다 성격이 좋고 털털해요. 무사히 찍었습니다.(웃음)”
그래도 유부남인 ‘선우’가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건 거슬린다. 그 역시 공감한 듯 “(치명적인 유혹에) 망설이고 갈등하는 신들은 몽땅 편집됐다”고 했다. 더구나 실제 대한민국이 다 아는 여배우와 열애 중인 그에게 ‘간통’은 너무 먼 나라 얘기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반칙을 싫어해요. 남녀 사이에도 의리란 게 있잖아요. 저라는 사람은 누구보다 유혹에 강하고 사랑에 있어서 의리를 지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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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집 가서 자장면도 먹고 짬뽕도 먹고 싶을 때가 있는데, ‘간기남’은 바로 짬자면을 먹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영화죠. 스릴러, 코미디, 에로 모두를 보고 싶은 분들에겐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일 겁니다.”
연극계에서 12년, 영화계에서 10년. 쓴맛 단맛 다 본 세월이지만 “시계로 비유하면 아직 아점(아침겸점심)을 먹은 정도”라고 한다. 그의 말마따나 ‘아직 허물을 다 벗지 못한 배우’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정장을 쫙 빼입고 나서지 않으면 못 알아본다”거나 “팬들조차 박휘순으로 아는 사람들이 있어 맘 상한다”는 소소한 얘기들은 친근한 배우의 매력을 새삼 느끼게도 했다.
“영화 10년 하면서 이것저것 다 기웃거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happy@mk.co.kr/사진=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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