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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참은 1일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아침에 고인의 소식을 들었다. 너무 일찍 보내지 않았나 아쉬움이 크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 누구보다 긴 세월 MC로 같이 활동했던 허참과 박상규. 그는 고인에 대한 소소한 기억들을 꺼내놓으며 추억에 잠겼다.
“불과 얼마 전에 방송(MBC ‘기분 좋은 날’)에서 상규 형 얘길 한 적이 있어요. 그 후로는 조금씩 호전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작년 봄쯤인가 1차 뇌졸중이 왔을 때 행사를 하고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라 집까지 모셔드린다고 했었죠. 그냥 걸어가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정도로 건강을 찾아가는 것 같았는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며 침묵하던 그는 “한 해 사이에 그렇게… 좋아졌다고 들었는데… ‘운동하는 모습도, 산책하는 모습도 방송으로 봐서 좋구나’ 했는데…”라며 “국민들에게 큰 웃음을 주신 분이고, 대학가를 돌며 에너지 넘치게 진행하던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다.
특히 고인과 MBC 라디오 ‘젊음을 가득히’에서 시작된 인연을 더듬으며 “박상규씨는 연대 국문과 출신이라 그런지 오프닝 멘트가 굉장히 문학적이었다. 멘트를 정말 근사하게 잘 썼다. 저에게 있어 롤모델이었다”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고인의 무대로 이화여자 대학교 강당에서 있었던 방송을 꼽았다.
“당시 이종환씨가 게스트로 나왔는데, 관중을 웃음의 도가니로 만들었던 게 기억나요. 그러면서 노래가 굉장히 히트되기 시작했는데 그게 ‘조약돌’이었어요.”
아직까지도 박상규를 대표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로 꼽히는 ‘명랑 운동회’. 일요일 낮 당대 최고 스타들이 참여해 스포츠를 즐기던 이 프로그램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던 장수 프로그램이었다. 허참은 “선배님은 가수이면서도 진행자로 훌륭한 역량을 갖고 계시던 분이셨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 MC로 우뚝 섰다”고 추억했다.
고인은 정상에 있으면서도 오만하지 않았다. 겸손함을 잃지 않으며 주변을 챙겼다. 오랜 시간 동안 허참을 비롯한 동생들이 잘 따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그의 강직한 성품 때문이었다. 불의를 보면 절대로 용서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면서도 고인은 평소 아내를 굉장히 사랑하는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다.
허참은 고인에 관한 얘기를 하던 중 80년대를 주름잡던 MBC 라디오 ‘싱글벙글쇼2’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내가 1부를, 상규 형이 2부를 했는데, 술을 워낙 좋아하셔서 조마조마 했어요. 형 집에만 가면 냉장고에 술이 가득했죠. 하지만 방송만 했다 하면 환상적인 진행 솜씨를 보여줬어요.”
한편 박상규는 1965년 KBS 1기 전속 가수로 데뷔했다. 70년대 ‘조약돌’ ‘친구야 친구’ 등으로 인기를 끌었고 90년대까지 라디오
한편 국민 원조 MC 허참은 MBN 신개념 노하우 대결 버라이어티 ’엄지의 제왕’을 통해 ’제2 전성기’를 맞고 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소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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