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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을 빌자면 자칫 삐끗거릴 수 있는 지점도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이라면 당연히 극 중 정우성이 악역을 맡은 제임스나, 설경구가 연기한 황 반장의 과거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작진이나 배우들은 그 부분에 신경을 쓰진 않았다.
‘감시자들’은 극 중 한효주가 연기한 풋내기 여형사 하윤주의 성장 이야기를 중심에 뒀다. 여기에 경찰 조직과 범죄 조직의 대립 흐름으로 세밀하고 섬세하게 구성하려 노력했다. 특히 과거 이야기를 찍어놓고 뺀 게 아니라, 처음부터 건드리지 않았다. 찍은 걸 드러내는 것과 처음부터 없던 것의 차이는 크다.
영화의 만듦새도 괜찮고, 영화를 향한 설경구의 애착도 강해 보인다. 하지만 최근 제작발표회나 언론시사회 등에서 그가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듣고는 사실 실망할 정도였다. 그는 출연 이유를 물으면 “정우성과 한효주가 참여하는 작품이니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하겠다고 했다”고 몇 차례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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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우성과 함께하고 싶었던 이유는 또 있다. 설경구는 영화 ‘유령’(1999)에서 정우성을 만난 적이 있다. 연극계에서 이름을 알리던 그는 아르바이트 명목으로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에 참여했다가 제작사들의 눈에 띄었다. 3회 촬영하고 꽤 괜찮은 수입을 얻은 그는 연극 무대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개봉할 즈음에 차승재 전 싸이더스FNH 대표로부터 제의를 받고 ‘유령’에 참여했다. 그렇게 정우성과 인연을 맺었다.
설경구는 “단역을 했을 때”라고 웃으며 “우성이 손에 죽었다”고 회상했다.
“(차)승재 형 덕에 ‘유령’ 참여하게 됐죠. 우성이를 만났어도 별로 관계는 없었어요. 다만 그때 우성이가 20대 중반이었는데 후광이 장난 아니었다는 기억은 있죠. 그때 난 우성이에게 말 걸 짬밥도 아니었어요. 나중에 승재 형 때문에 소속사도 들어가고, 영화 ‘박하사탕’이 잘 됐어요. 나도 좀 컸다고 매니저에게 ‘우성이에게 형이랑 술 한잔 먹으면 안 되겠느냐’고 물어보라고 하고 만나게 됐죠. 우성이가 마침 ‘정말 영화 잘 봤고 시작부터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둘 다 술 먹기 전에는 말이 없는데 그때 술 어마어마하게 먹었어요. 많이 얘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언젠가 작품 하자고 했는데 이번이 된 거예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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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효주와 데뷔 이후 첫 악역에 도전한 정우성에게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설경구는 내지르지 않고, 조용히 지원을 해주는 느낌이다.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공공의 적’ 의 직구형사 강철중의 이미지를 지우려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 그의 노력 덕분인지 강철중은 떠오르지 않는다. ‘강철중’, ‘역도산’, ‘타워’ 등 몸을 쓰는 역할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다르다.
그의 골수 팬들은 그 자신만의 색깔이 너무 빠진 것 같다고 아쉽다는 의견을 건네기도 한다. 또 튀지도 않고, 조용한 캐릭터인데 왜 참여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한단다. 설경구는 “극 중 황 반장에게서 강철중이 보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내려놓았다”고 털어놓았다.
일부러 과거 이미지를 떨쳐 버리려고 애쓰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색깔이 빠지더라고 웃는다. “영화 ‘해결사’를 할 때만 해도 강철중 같지 않아 보이려고 한 신씩 체크하면서 촬영했는데 이번에는 대본에만 충실하니 강철중 색깔이 빠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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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