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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작가는 26일 제작사 DRM을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 분야를 물색하다가 진실을 찾는 과정이 많은 법정물을 해보기로 결심했다”며 “2011년부터 2년간 서울에 있는 지원들을 모두 다니며 법정에서 각종 재판을 방청했고, 여러 법조계 인물들을 취재했다. 콘텐츠진흥원에서 주최하는 ‘안변의 사건파일’, ‘표창원 교수의 범죄심리’ 등의 강좌도 이수하며 에피소드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그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 쌍둥이 에피소드 역시 그런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며 “2011년에 자문변호사와 내용을 짜 놓은 것이고, 도진기 작가의 ‘악마의 증명’은 2012년 출간됐고 그 내용을 전혀 접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박 작가의 입장 전문.
도진기 작가님께서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쌍둥이 에피소드가 쌍둥이의 살인, 지문도 없고 CCTV에 얼굴만 찍힌 상황, 그래서 둘 중 하나가 범인인 것은 분명하나 누구인지는 특정할 수 없는 법적 딜레마, 그리고 쌍둥이들이 짜고 법정에서 범행을 부인하고 사건을 이같은 법률상 딜레마로 몰고 가는 상황이 작가님의 ‘악마의 증명’과 완전히 동일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너의 목소리가 들려’ 4회를 보시면 쌍둥이 중 1명만 사건현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형제 두 명이 함께 있었고, 이렇게 사건의 시작부터가 ‘악마의 증명’과 다릅니다.
4회부터 나오는 쌍둥이 살인사건 에피소드를 구성하게 된 계기는 ‘쌍둥이’가 아니라, 공동정범으로 용의자가 두 명인 이태원살인사건이라는 실재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1997년에 발생한 이 사건에서는 분명 현장에 있던 용의자 2명 중 한 명은 칼로 살인을 저질렀는데, 둘 중 누가 범인인지 알 수가 없어 결국 둘 다 놓아주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해 당시 사건 담당 형사님은 처음부터 담당 검사가 공동정범으로 기소를 했으면 둘 다 잡을 수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언론에 하셨습니다.
이에 용의자가 두 명이 함께 있고, 그 중 한명은 반드시 살인을 저질렀지만 누군지 알 수 없는 공동정범 상황을 만들고자 했고, 여기에 사건을 좀 더 풀기 어렵게 만들어 극적 재미를 더 주고자 목격자가 있는 상황에서도 두 사람 중 누가 범인인 줄 알 수 없게 하려고 했고, 그래서 일란성 쌍둥이가 적합하겠다 싶어 범인을 쌍둥이로 설정한 것입니다.
쌍둥이가 살인현장에 둘 다 있었고, 범인을 특정할 수 없는 검사가 어떻게든 범인을 잡겠다는 의지로 쌍둥이를 공동정범으로 일단 기소하자는 데서부터 에피소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5회에 ‘이 사건이 자칫 이태원 살인사건처럼 미궁에 빠질 수도 있다’는 대사도 일부러 넣은 것입니다.
쌍둥이 범죄에 대한 각종 기사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외모가 똑같은 점을 이용해 계획적인 범행을 저지르는 쌍둥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염이 있는 쌍둥이 중 한명이 경찰을 폭행한 후, 다른 쌍둥이와 함께 자수를 하는데, 둘 중 누가 범인인지 모르게 둘 다 수염을 밀었다는 기사가 1990년(사건 발생은 1988년)에 타임지에 실렸습니다.
또한 2010년 8월에는 쌍둥이 형제가 짜고 한 명만 나이트클럽에 가서 총기사건을 저지른 후, 형제가 서로 범행을 부인해 범인을 특정할 수 없어 기소유예를 내리고 재수사를 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유코피아 미국 사회란에 실려 있습니다.
2011년 8월에도 나이트클럽에서 권총살인이 일어났고 용의자가 체포되었는데 쌍둥이 형도 클럽 안에 있어서 목격자 중 몇 명은 범인으로 형을, 다른 몇 명은 동생을 지목하고 둘 다 범행을 부인해서 풀려난 사건이 타임지에 실렸습니다. 그리고 타임지는 이 기사에 덧붙여 특집으로 쌍둥이 범죄 중 기괴한 사건 10가지를 추려서 특집기사까지 꾸몄습니다.
이런 기사를 토대로 저도 에피소드를 만들 때 쌍둥이가 처음부터 살인을 계획하고 빠져나가기 위해 외모가 똑같은 쌍둥이인 점을 이용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행 장면이 모두 찍히는 것을 알면서도 쌍둥이가 태연히 CCTV 앞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급기야 복면까지 벗는 설정으로 한 것입니다. 일부러 머리 모양도 똑같이 하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설정(5회에서 방청하러 온 학생들이 ‘머리 모양도 똑같다’는 대사를 합니다)하였습니다.
쌍둥이인 점을 이용해 살인을 계획했으니 장갑을 끼고 범행을 저질렀고 당연히 사건현장에 지문이 남지 않았던 겁니다. 각종 뉴스와 범죄 드라마에서 나오듯이 계획범죄에서 지문을 감추는 것은 기본입니다.
또한 계획살인을 하려면 복수이고 복수에는 이유가 필요하므로 6회 방송분에서 쌍둥이 중 동생의 여자 친구가 피해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설정을 준 것입니다.
도진기 작가님께서는 법률의 구멍이라는 발상을 부각시키기 위해 쌍둥이, 칼로 찌르는 살인, CCTV에 얼굴이 찍히는 상황, 그 외에는 지문 등 아무런 증거가 없어 둘 중 누군가를 특정할 수 없는 상황, 법정에서 입을 맞추어 사건을 미궁에 빠뜨리는 상황까지 철저히 계산해서 사건 자체를 구성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그러한 에피소드는 작가님께서 찾아본 바로는 100년 역사에 달하는 미국의 추리물이나 일본의 추리물에도 비슷한 예조차 없었고 실제 사례로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일란성 쌍둥이는 외모와 DNA가 똑같고 지문만 다르므로(어떤 세쌍둥이는 지문마저 같다고 함) 사건을 미궁에 빠뜨리기에 제격이므로 오래전부터 영화와 각종 범죄물과 추리물에 애용되고 있습니다.
1946년에 미국에서 제작되고 한국에서도 상영된 ‘검은 거울’이라는 영화는 일란성 쌍둥이 자매 중 동생이 범인이지만, 목격자들이 쌍둥이 중 어느 쪽이 범인인지 구별할 수 없는데다가 언니가 묵비권을 행사해 형사가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 내용입니다.
‘명탐정 코난’이라는 일본의 유명 애니매이션에도 쌍둥이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일본에서 1997년 방영되고 한국에서는 2000년에 KBS 2TV에서 ‘세명의 용의자’라는 부제로 방송됐습니다. 세쌍둥이 중 한 명이 용의자인데, 나머지 쌍둥이들이 나타나서 목격자가 헷갈리게 되는 상황이고 각자 알리바이도 있어 추리에 어려움을 겪는 내용입니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방송된 미국드라마인 ‘해리스 로’(Harry's law) 시즌2의 12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여자 쌍둥이가 한 남자와 결혼하고 함께 사는데, 그 남자가 살해되고 둘 중 한 명의 얼굴이 CCTV에 찍혀 용의자가 되지만 누군지 알 수 없는 사건이 나옵니다. ‘CSI 마이애미 시즌5’ 중 18번째 에피소드는 대부호인 한 남편이 매우 바빠서 성형수술을 통해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만들었는데 이를 모르는 아내가 가짜 남편을 죽이고, 목격자에 의해 아내가 용의자가 되는데 아내가 알고 보니 세쌍둥이라 범인을 특정해내기 어려워 항원 항체검사까지 해서 범인을 잡는 내용입니다.
또한 도진기 작가님께서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 쌍둥이 중 동생이 머리가 좋고 형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악마의 증명’과 똑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외모가 똑같은 쌍둥이지만 어느 한쪽은 머리가 좋거나 출세했고 어느 한쪽은 그렇지 않은 설정 역시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나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쌍둥이들이 똑같은 외모만큼 똑같은 인생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2003년 우리나라에서 방영된 죄와 벌이라는 프로그램에도 재연됐던 ‘지나 한 살인음모 사건’(1996년 미국에서 발생)을 보면, 언니는 대학생인데 동생은 대학에 가지도 못한 채 카지노 중독자가 되었고, 동생은 그런 언니를 공공연하게 질투하고 미워해 평소 ‘죽이겠다’는 말을 해 살인음모 혐의까지 받았습니다.
‘역전의 명수’(2005, 한국), ‘배드 컴퍼니’(2002, 미국), ‘킬리만자로’(2000, 한국), ‘쌍생아’(1999, 일본) 등등의 영화와 ‘야왕’(2013), ‘시리우스’(2013), ‘10TEN’(2011) 등등의 드라마에서 보듯이 쌍둥이 주인공을 설정하면 갈등을 증폭시키거나 긴장감을 주기 위해 법칙처럼 한쪽이 다른 한쪽과 비교되게 합니다.
이렇듯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쌍둥이 에피소드는 공동정범에 관한 법리를 드라마에서 풀어보고자 만들어진 것이며 작가님의 ‘악마의 증명’에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