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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설정이야 능력 있는 봉 감독이니 바꾸면 됐을 것이고, 원빈이라는 배우가 더 외국에서 통할 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을까? 봉 감독이 송강호를 택한 건 오래전부터 같이 하기로 한 이유도 있지만, 송강호를 향한 믿음과 의자가 컸다.
봉 감독은 “솔직히 신경안정제가 필요했다”고 밝혔다. 그는 “외국이라는 낯선 곳에서, 또 낯선 배우들에 둘러싸여, 이상한 놀이기구 세트에서 영화를 찍어야 했는데 송강호 선배가 나타나기만 하면 편안했다”며 “선배를 보면 ‘맞아! 나 평소처럼 영화 찍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고아성 역시 강호 선배와 마찬가지로 인간 신경안정제였다”고 웃었다.
“송강호라는 배우의 외모에는 의외의 섹시미 같은 게 있어요. 그런데 과소평가되는 것 같아요. 연기 클래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분이잖아요? 강호 선배의 섹시함을 보여주고 싶었고, 외국 배우들과 어떻게 섞이는지 그 모습도 정말 보고 싶었죠. 원빈씨는 연기도 잘하는 분인데 외모가 무척 아름다워 연기적인 면에서 과소평가를 받고 손해 보는 게 아닐까 해요. ‘마더’ 때 영화제에 갔는데 원빈이 한류스타라는 정보가 없는 외국인들이 아들 역할은 어려운 연기였는데 누구냐는 등 질문을 엄청나게 하기도 했죠.”
봉 감독의 말마따나 ‘설국열차’ 포스터 속 송강호는 매력적이다. 극 중 송강호가 맡은 보안설계사 남궁민수는 꼬리칸 사람들의 반란에 무심한 듯, 관심 없는 듯 보이지만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영화는 새로운 빙하기, 인류 마지막 생존 지역인 열차 안에서 억압에 시달리던 꼬리 칸 사람들의 멈출 수 없는 반란을 담았다. 크리스 에반스·틸다 스윈튼·존 허트·제이미 벨·에드 해리스·이완 브렘너·옥타비아 스펜서 등이 참여했다.
봉 감독은 어느 배우에게 과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진 않는다. 배우들은 적정 선을 지키며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 배우, 외국 배우 모두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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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감독은 2005년 초 겨울, 홍대 한 만홧가게에서 ‘설국열차’의 프랑스 원작 만화를 단숨에 읽고 구상을 했다. 당시 ‘괴물’ 촬영을 들어가기 얼마 전이었다. 일단 제작사에 판권 구매를 요청했고, 2006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원작자를 만나 얘기를 나눴다. 다행히 ‘괴물’이 영화제에서 반응이 좋았고, 그림과 글을 쓴 원작자들과 오랜 인연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봉 감독은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사실 ‘설국열차’를 만들 수 없을 뻔했다는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그는 “1990년대 초 프랑스 어떤 감독이 이 만화의 판권을 샀다고 하더라. 하지만 감독과 PD의 이견 조율이 안 돼 싸우다 판권 계약이 무산됐었다”며 “이후 우리가 제의한 건데 그분들은 동양의 먼 나라에서 영화 만들겠다고 하니 얼마나 신기했을까 싶다. ‘살인의 추억’이 프랑스에서도 개봉했었고, ‘괴물’도 나중에 잘 돼 이야기가 잘 풀렸다”고 회상했다.
‘설국열차’는 한국에서 가장 큰 액수인 4000만 달러(약 450억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한국 영화사상 최고 제작비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그리 많지 않은 금액이다. 크리스 에반스는 미국 토크쇼에서 근황을 전하며 “독특하고 독창적인, 스몰 사이즈(제작 규모가 작은) 영화를 찍고 있다”고 하기도 했다. 그가 출연해 성공한 어벤져스가 2억2000만 달러(약 2500억원) 정보니 맞는 말이긴 하다.
봉 감독은 잣대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수식어의 함정”이라고 표현했다. 아쉬움이 전해졌다. “감독들이 제작비 관련해서 모두가 만족하지는 않아요. 사실 내 마음 같아서는 더 많은 기차 칸을 보여주고 싶었죠. 뭔가를 더 하고 싶은데 PD는 잘라야 하는 과정이에요. 아이러니하게 가장 허리띠를 동여매고 찍은 느낌이었다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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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세 명의 한국 유명 감독들이 외국에서 작업한 영화를 한국에 선보였다. 공교롭게도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와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는 흥행에 참패했다. 마지막 타자가 된 봉 감독은 어떤 생각일까?
“앞으로는 이런 케이스가 많아질 것 같아요. 할리우드에서 최동훈, 나홍진, 김용화 감독 등에 관심이 많거든요. 스포츠에서도 우리나라의 박지성, 박찬호 선수가 외국에서 활동할 때, 처음에는 엄청 신기해했지만 이제 익숙해졌잖아요? 외국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아지기도 했고요. 영화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점점 익숙해지는 단계죠. 아직은 시작 단계, 박찬호 선수가 나왔을 때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히트작도 점점 나오겠죠.”(웃음)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