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경호(30)가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다섯 기수 선배 하정우와 대학 시절 함께한 소소한 기억들이다.
고등학교 때 하정우의 연기를 보고 따라 하고 좋아했다는 정경호는 하정우의 말이라면 죽는시늉까지 했다. 1학년 때는 무서웠다던 선배 하정우를 좋다고 따랐고, 조언을 듣고 많이 배웠다. 함께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는 그는 드디어 기회를 얻었다. 하정우가 감독 데뷔하는 영화 ‘롤러코스터’를 통해서다.
물론 대학교에서 작품을 통해 호흡을 맞추기도 했고, 영화 ‘비스티 보이즈’에서 함께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렸을 때다. 전역하고 사회에 돌아온 정경호는 한 뼘 더 자랐다. 생각도 깊어졌으니 느낌이 또 다르다고 한다.
“‘황해’나 ‘577 프로젝트’ 등에 정우 형과 함께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아쉬웠어요. 제가 군대에 있는 바람에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게 더 늦어지게 됐죠. ‘롤러코스터’는 좋아하는 사람인 정우 형한테 연기 못하는 후배라고 찍히고 싶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은근한 긴장감이 있어서 특히 좋았어요.”
“전역하고 나서 형을 만났는데 작품 결정했느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아직이라고 하니 잠깐 기다려보라고 했어요. 2주 후인가? 시나리오를 주며 ‘너 생각하며 썼다’고 하시는데 고마웠어요. 정우 형과 뭔가를 같이 하는 자체만으로 고마웠는데, 한바탕 즐거운 소풍이 되겠구나 생각했죠.”(웃음)
정경호는 자신이 너무 빨리 결정했는지 하정우 감독이 놀라워했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에 형이 한 말인데, 내 복귀작이고 자신의 첫 연출작인데 무슨 고민도 없이 하겠다고 했는지 놀랐다고 하더라.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정말 고마웠다고 했다. ‘모든 작품을 선택할 때 그렇게 재지 말고 하라’고 하더라. 자기도 그렇게 해왔다는 말을 해줬다”고 좋아했다.
솔직히 인정받는 배우 하정우로서가 아닌, 초짜 감독 하정우는 못미더웠을 것 같다. 한 번쯤은 의심하기도 했을 텐데 정경호는 “단 한 번도, 1초도 의심하거나 고민하지 않았다”고 했다.
“절대 의심하지는 않았어요. 계속 형을 봐왔으니까요. 또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 전 3개월가량을 연습했는데, 한 달 반 정도 되니 빨리 촬영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준규라는 캐릭터와 영화적 상황에 살이 붙으니 정말 신이 났거든요. 10년 동안 배우 생활하며 ‘저런 행동은 하면 안 돼, 저렇게까지 할 수 있나. 저게 연예인 병인가?’라고 생각한 부분들만 잡아내 영화에서 보여주는데,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을 마준규가 하는 것이니 일종의 스트레스도 해결됐어요. 4개월 동안 욕도 허락을 받았으니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하기도 했죠.”(웃음)
‘롤러코스터’가 끝나면 배우 정경호에게 욕쟁이라는 꼬리표가 달릴지도 모를 일이다. 유쾌하게 웃어넘긴다. “다음 작품에서 만회하면 되죠. 이것 때문에 제가 명동에서 ‘난 욕쟁이가 아닙니다~’라고 외칠 순 없잖아요. 하하하. 또 만약에 그런 소리를 들어도 나중에 고민할래요.”
정경호는 영화 속 상황과 비슷한 경험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집 근처 통닭집에서 후줄근한 차림으로 친구들과 소주를 먹었는데 어떤 영화에 투자했던 회장님에게 인사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과거 사건을 떠올린 그는 여전히 그 상황이 황당한지 어깨를 으쓱했다.
“아버지가 시사회가 끝나고 술을 많이 드시고 전화가 왔어요. 왠지 모를 뿌듯함에 드셨다고 하던데요? ‘이번 영화 때문이냐?’고 물으니 ‘너도 노력하는 배우인 것 같아 뿌듯하다’고 하시더라고요. 평상시 그런 말씀을 안 하시는데 내심 좋았죠. 물론 술기운에 그러셔서 지금은 기억도 못 하시겠지만요.”(웃음)
‘무정도시’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는데 종합편성채널 작품이라 시청률의 아쉬움이 조금은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정경호는 “종편 드라마가 대중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로맨스가 필요해’를 군대에서 정말 잘 봐 이정효 PD님 작품을 같이 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무정도시’와 ‘롤러코스터’처럼 캐릭터 센 것들을 하니 뭔가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따라가는 맛이 쏠쏠한 것 같다”고 만족해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유용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