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우리 집이 딱히 이름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신촌의 있는 하숙집이니 ‘신촌하숙’이라고 부르지 뭐.”
하숙의 이름에 대해서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이었다. CGV 신촌아트레온을 마주하고 얕은 언덕배기 중턱에 자리한 일명 ‘신촌하숙’은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속 신촌하숙처럼 그럴듯한 간판도 널따란 정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누군가 ‘여기가 바로 하숙집이야’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이곳이 하숙을 하는 곳인지 아니면 그냥 평범한 가정집인지 모를 정도로 소박하고 또 친근했다.
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하숙집 주인 장경희 씨(이후 편의상 이모라고 하겠다.)가 반갑게 맞이했다. 추운 겨울 따듯한 온기가 도는 하숙집은 ‘우리 집’에 온 듯 편안함과 정겨움이 가득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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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집 이모가 아끼는 편지들. 편지를 하나하나 읽으며 연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
“처음부터 하숙집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지. 솔직히 말하면 그 긴 세월 하숙에 ‘하’자도 모르고 살았는데, 자식 둘을 외국으로 유학 보내고 부부끼리만 남다보니 너무 외롭더라고. 그러던 중 일본어 교사를 하는 친구가 나보고 내가 소개시켜 줄 테니 일본 홈스테이 한 번 해보라고 권유를 하더라. 그렇게 아야꼬라는 학생과 만나게 됐어. 벌써 13년 전 이야기지.”
그렇게 홈스테이 형식으로 일본인 학생들과 처음 만나게 된 이모는 하숙비로 받았던 45만원이 마이너스가 될 정도로, 먹이고 재워주는 것은 물론 아이들을 이끌고 워커힐 호텔에서부터 남산타워에 이르기까지 서울 관광을 시켜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데리고 다니니 아야꼬가 ‘너무 좋다’며 한국에 오면 계속 우리 집에 찾아오더라. 아야꼬 뿐만이 아니었다. 두 명 정도 더 홈스테이를 했었는데 한국에만 들어오면 그렇게 우리 집을 찾더라고. 그렇게 한두 명을 받다보니 ‘하숙을 해보는 게 어떨까’라고 생각하게 됐고, 그렇게 시작한 것이 바로 하숙이야.”
시작은 일본인 학생이었지만 이후 입소문을 타고 일본, 한국, 중국, 홍콩, 미국, 벨기에 등 다양한 국적을 지닌 이들이 이 하숙집을 들려 오랫동안 이모네 식구들과 함께 했다. 이들이 하숙집에 머물렀던 기간 또한 유달리 길다. 5년 이상 살았던 사람도 많고, 심지어는 10년 넘게 살고 사람도 있었다. 탁자 속에는 그동안 거쳐 간 하숙생들 사진이 가득했다. 이모는 그 중 11년이 됐다는 하숙생을 보며 “이제는 가족과 다를 바가 없다”며 흐뭇해했다.
이 이야기를 하더니 이모는 별안간 2001년부터 함께 살았던 이들의 간단한 정보와 수납내부를 적어 놓은 장부를 꺼내들면서 그동안 만나왔던 학생들에 대한 수다 한 마당을 벌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던 중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현재 하숙방의 가격이 10년 전과 지금이나 똑같다는 것이다. 오르지 않는 하숙비에 대해서 놀라워하자 이모는 쑥스러워 하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주위에서는 물가가 오른 만큼 다들 올리라고 하는데 별로 나는 올리고 싶은 생각도 없어. 돈을 목적으로 하는 하숙도 아니고. 딸은 시집갔지, 아들도 외국에 있고, 적적해서 시작한 하숙인데 하숙생들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 진짜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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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집 전경. 특별한 간판도 이름도 없지만, 그렇기에 우리 집에 들어가는 듯 정겨움이 가득했다. |
“옛날에는 명절 음식을 다 같이 만들기도 하고, 세뱃돈을 봉투에 넣어서 주기도 했었지. 겨울에는 다함께 스키장도 가고 그랬는데, 지금은 확실히 변했어. 한국 학생들이 점점 개인주의로 물들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 그건 국적을 불문하는 것 같더라고. 예전에는 함께 전부치고 먹는 걸 좋아했던 애들의 나이가 점점 어려질수록 ‘시끄러운 게 싫다’며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거지. 심지어 나에게 ‘자기는 엄마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여기 왔는데 이모가 날 너무 간섭한다’고 울면서 나가는 학생도 있었어. 나는 그냥 밥 먹으러 안 올라오면 문자로 ‘왜 밥 안 먹으러 왔어. 이모가 쌍화탕 갖다 줄까’라고 걱정한 것뿐인데, 그것조차 간섭이 되다니…”
깊은 한 숨 속에 답답함과 속상함이 가득 묻어나왔다. 그래도 여전히 하숙을 하는 이모에게 힘을 주는 이들은 바로 하숙집 학생들이었다.
“예전에 아들같이 여기는 학생에게 초대를 받아 일본에 간 적이 있었지. 일본에 갔더니 예전에 우리 집에서 살던 애들이 ‘이모가 일본 온다’며 총 28명이 모였더라고. 일본에서 때 아닌 정모를 했었는데 그때의 감격과 뿌듯함은 아직도 잊지 못해.”
그러더니 이번에는 당시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며 즐거운 회상에 빠져들었다. 당시 다녔던 여행지에서부터 하숙생들과의 재회, 결혼 후 뒤풀이 현장까지 세세하게 설명하던 이모는 “예전에 애들이 보내준 편지가 이렇게 쌓여있다”며 소중한 보물처럼 여기는 학생들의 편지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문득 한 여자아이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19살에 우리 집에 왔던 아이야. 고등학교 졸업하고 와서 어학당을 다니다가 일본에 다시 들어가서 중국어 전문대를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정말 예쁘고 마음도 착한 아이인데 지난해 국내에서 사기 취업을 당해 마음이 참 아팠었어. 사건의 전말은 일본에 있던 중 한 한국 여자가 자신이 한국에서 일본에 관련한 카페를 하는데 매니저로 오라며 캐스팅 하면서부터 시작됐어. 처음에는 아무 의심 없이 갔는데 알고 보니 카페도 아니고 이상한 복층 집이더라고. 두 달 치 월급도 밀린데다, 남은 한 달가량은 아무것도 하는 거 없이 그냥 설거지만 한 모양이더라. 그뿐이면 다행이게. 애가 얼굴도 예쁘고 그러니 계속 술집 나가서 일해 볼 생각 없냐고 종용했다고 하더라고. 가족이 없는 타국인데다가, 캐스팅한 여자의 남자친구가 조폭처럼 험악한 인상이다 보니 얼마나 무섭겠어. 한국에서 의지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보니 바로 내게 연락해서 ‘이모네 집에서 살고 싶다’고 눈물을 흘리더라. 연락을 받자마자 남편과 함께 바로 그 아이에게 있는 곳으로 찾아가, 중요한 짐만 부랴부랴 챙긴 뒤 서둘러 집으로 왔지.”
하숙을 하면서 각종 에피소드와 대소 고민을 나누던 인터뷰를 마치고 발걸음을 옮기려는 길. 우연히 하숙생 미노하라 미미양과 마주하게 됐다. 그녀에게 이모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슬쩍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실제로 가본 하숙집에는 ‘응답하라 1994’와 같은 쓰레기(정우 분)도 칠봉이(유연석 분)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대신 그 자리에는 하숙생들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모만큼은 실제로 존재했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917@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