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박정선 기자] “그런 거 있잖아요, 요술램프 같은…. 90평 남짓 되는 제 소품창고에서 무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어떻게 보면 전국이 내 소품창고일 수도 있겠네요. 하하”
지난 2000년부터 현재까지 필드에서 뛰고 있는 전재욱 소품기사는 과거 소품팀의 막내로 시작해 ‘도둑들’ ‘광해’ ‘달콤한 인생’ ‘너는 내 운명’ 그리고 현재 상영 중인 ‘기술자들’까지 다양한 작품이 그의 손을 거쳤다. 근 15년을 한 가지 일에 몰두해 한 팀의 리더 자리에 앉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가장 바쁘게 발을 움직인다.
사실 소품팀이라 하면 단순히 ‘소품을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실제 소품팀은 영화 기획 단계부터 함께 회의를 거치고 촬영이 시작되기 전 소품을 준비하며, 촬영 당시 소품을 운반·배치한다. 물론 촬영이 끝난 이후 소품을 거둬들이는 일도 모두 소품팀의 역할이다. 결국 이들은 영화 기획단계부터 마무리 단계까지 영화의 전반적인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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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과거 촬영 현장에서 소품팀은 까탈스러운 배우들의 분풀이 대상이라는 말이 있었다.
A. “뭐 옛날과 비교하면 지금은 확실히 달라졌죠. 그런데 지금도 그런 건 남아있어요. 꼭 배우들의 분풀이 대상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전반적으로 다른 파트의 사람들이 봤을 때 좀 쉬워 보인다고 할까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저는 그런 처우를 절대 인정하지 못하죠.”
Q. 미술팀 안에 소품팀이 있는 건가?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A. “대부분 사람들이 소품팀은 미술팀에서 고용한 하청업체라는 개념으로 많이 생각하더라고요. 영화인이라는 개념은 전혀 없어요. 예전엔 미술팀이 없었고, 소품팀만 있었죠. 결국 소품팀이 하던 일을 미술팀과 분담을 하게 된 거죠. 전문화 됐다는 점에서는 잘 된 거죠.”
Q. 대중들의 시선도 그렇지만, 소품팀 직원들 자체도 자신의 일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A. “음, 속된 말로 소품은 ‘반 노가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분명히 있어요. 미술은 머리로, 소품은 몸으로 한다는 생각이죠. 그래서 소품팀으로 들어왔다가 미술팀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하지만 영화는 각 파트마다 분명한 자기 몫이 있잖아요. 보통 젊은 친구들의 경우가 대부분인데 ‘숲을 보라’고 꼭 이야기 해주고 싶어요. 이래저래 소품지기가 되고 싶은 젊은 친구들에게는 힘을 실어주고 싶어요.”
Q. 참여한 작품들이 대부분 흥행했다. 이번 ‘기술자들’은 어떤가.
A. “일단 김홍선 감독이 저에겐 센세이션이었어요. 국내 영화계에 빅4라 불리는 감독들과 작업을 해왔지만 김 감독을 만나고 ‘이 사람 천잰가’ 싶더라고요. 첫 신부터 끝까지 콘티가 나와 있는데 그걸 전체 스태프 앞에서 막힘없이 풀어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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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특히 ‘기술자들’에서 눈길을 끄는 소품은 금고와 돈뭉치다.
A. “돈을 만드는 게 정말 난해했어요. 결론부터 말하면 돈이 인쇄기에 들어가면서 나올 때는 변해서 나와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시간적으로, 예산적으로 생각만큼 안 돼서 아쉬워요. 후반부에 돈을 뿌리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에요. 20만장을 찍었는데 거의 다 풀었어요. 아휴. 생각도 하기 싫어요. 정말 어마어마 하더라고요. 정리가 안 돼서 일 없는 친구들(직원) 와서 돈 정리 하고, 아주머니 4분을 써서 정리 작업을 했어요. 돈을 이동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고요.”
Q. 소품을 만드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
A. “첫째는 관객, 둘째는 스태프, 셋째는 감독님. 이 세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죠. 영화에서 소품팀은 그냥 티 나지도, 모나지도 않는 하나의 일원이지만 묵묵하게 자신의 목표를 구현해 내요. 누가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우린 그냥 영화인이니까요.”
Q. 그럼에도 소품지기라는 직업을 가진 것에 대한 보람이나 재미가 있나.
A. “그럼요. 나만 그런 걸 수도 있는데, 오만가지를 다 구현해내는 게 재밌어요.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것을 실제로 구현해내고, 또 그걸 통해 여러 사람들과 교감한다는 것이 가장 큰 재미죠. 지금은 개봉을 앞둔 영화 ‘행복이 가득한 집’을 촬영하고 있는데 이경미 감독이 제가 만든 소품을 보고 ‘예쁘다’면서 눈물까지 보이더라고요. 정말 뿌듯했어요.”
Q. 소소한 바람 같은 게 있나?
A. “영화라는 게 각 파트가 모여서 영화를 만드는 거잖아요. 촬영 초반, 서로 잘 몰라서 서먹한 경우가 많아요. 항상 바랐던 건 사전 MT였어요. 촬영을 하려면 당연히 친해져야 하는데 미리 친해지면 작업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거라는 생각이죠. 이번 ‘기술자들’에서는 김영철 선생님이 먼저 사전 MT를 제안하셨어요. 최근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Q. 마지막으로 ‘영화인’으로서의 장점이 있다면?
A. “한 영화에 많은 파트 사람들이 만나서 진행을 보는데 만나기 전까지 서로가 지내온 환경이 다 다르잖아요. 내가 예기치 못했던 걸 하는 경우도 있어요. 내가 생각한 것에 못 미치는 경우도 있고, 깨지고 얼굴 붉히는 일도 많고요. 하지만 영화인처럼 재미있는 직업도 또 없죠. 직장에 친구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좋은 거 보면서 일을 할 수 있겠어요. 물론 촬영의 일환이지만 그렇게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면서, 간·직접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장점이죠.”
최준용 기자, 박정선 기자, 여수정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