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황은희 기자] “배우는 맞지만, 재연배우는 아니에요”
다양한 장르의 재연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은 대부분은 자신이 재연배우임을 밝히는 것을 꺼린다. 재연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연배우라는 인식을 준 후엔 그 이외의 작품에는 출연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과 연기에 대한 애정은 여느 미니시리즈 주인공 못지 않다. 얼굴만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재연배우 K 씨는 “재연 프로그램에서는 내가 주인공”이라며 재연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점을 ‘출연 분량’으로 꼽았다.
그는 “일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대사 분량은 한두 마디에 불과하고, 등장하는 시간 또한 1~2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재연 프로그램에서는 적어도 15분가량 내가 극을 끌고 나갈 수 있고, 그만큼 긴 호흡으로 연기할 기회”라며 “그것이 내가 재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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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의외의 고충도 있었다. K 씨는 “재연 프로그램의 단점은 과장된 표현”이라며 “재연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현실감과 현장감을 잘 보여주기 위해 일반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이는 연기보다 과장해서 보여줘야 하는 부분이 있다. 이 과장된 연기를 계속해서 하다 보니 그 연기가 어느 순간 몸에 익어 계속해서 그런 연기를 하고 있더라”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 관계자들은 그들의 연기가 재연 프로그램의 틀에 박혀버렸다고 인식해서 꺼린다는 것이다.
고정적으로 재연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배우 B 씨는 “재연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출연하면 고정 수입은 있지만 다른 작품이나 다른 역할을 할 수 없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B 씨는 “수입적인 면으로 봤을 땐 꽤 쏠쏠한 편이다. 일반 드라마나 영화는 섭외 건이 들어와 진행되면 출연해 수입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고정적인 수입이 있다는 건 배우에게 정말 큰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익적인 부분과는 달리 배우로서의 위치는 애매해진다. 재연 프로그램들이 다양한 장르와 소재로 이뤄진다곤 하지만 대부분 범죄-사건사고 등을 다루고 있다. 그만큼 한정된 역할만 하게 되고 다양한 역할로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쌓고 싶지만, 캐릭터의 고정화로 쉽지 않다.
또다른 재연배우 J씨는 거듭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며 “사실 재연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프로필에서도 재연 프로그램 출연 경력은 삭제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방송 관계자들과 미팅을 하게 됐을 때 재연 프로그램의 출연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을 많이 봤다. 그들은 하나같이 ‘왜 재연 프로그램에 출연했나요?’라고 물더라. 그때 알았다.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려면 재연 프로그램은 독이 된다”고 경험담을 전했다.
다수의 재연배우는 자신이 재연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으면서도 그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했다. 배우라는 타이틀의 無 존재감은 이들에겐 큰 시련이지만, 재연배우로서 유명해지는 건 더 큰 시련이라는 것.
연기자로서 큰 꿈을 안고 언젠가는 주인공으로, 긴 호흡으로 연기할 날을 꿈꾸는 그들은 하나같이 ‘재연 프로그램은 꿈에 한 걸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꿈에 한걸음 멀어져가는 길’이라고 입을 모았다. 틀을 깨고 성장해나가야 하는 그들에게는, 인식에 대한 크나큰 벽이 존재했다.
황은희 기자 fokejh@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