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박정선 기자] 인사를 나누자마자 대뜸 취재진을 상대로 푸념을 늘어놓는다. 신이 너무 많았다고 투덜거리더니, 감독이 자신에게만 유독 혹독하다고 또 한 번 투덜거리는 그였다. 배우 주지훈의 첫인상은 그랬다. 서슴없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드러내는. 그렇다고 불만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이 투덜거림을 귀엽게 받아줄 수 있는 이유는 연기에 대한 그의 진정성에 있다.
영화 ‘간신’은 연산군 11년 1만 미녀를 바쳐 왕을 쥐락펴락했던 희대의 간신들의 치열한 권력 다툼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연산군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를 간신의 눈으로 담아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총 촬영의 약 95%를 참여했어요. 영화 전체가 128신이 안 되는데, 제가 촬영한 신만해도 128신이었어요. 몽타주신까지 하면 그렇게 되더라고요. 근데 많이 나오는 게 좋은 게 아닌 거예요. 다 잘하다가 하나 실수하면…(웃음). 많이 나올수록 실수할 확률이 올라가니까 리스크가 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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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곽혜미 기자 |
이러한 부담을 안고서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메가폰을 잡은 민규동 감독과의 인연 때문이다. 민 감독과 주지훈은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로 처음 연을 맺고 이후 ‘키친’ ‘결혼전야’ 등을 함께 했다. ‘키친’과 ‘결혼전야’의 홍지영 감독은 민규동 감독과 부부사이기도 하다. 이러한 친분 때문에 그는 민 감독의 제안에 시나리오도 읽지 않고 흔쾌히 출연 제의에 응했다.
“평소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죠. 시나리오를 안 보고 출연을 결정하는 배우가 어디 있겠어요. 지금까지 그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고, 다시는 없을 거예요.(웃음) 믿음이 있어서 응했는데 사실 어려움은 있더라고요. 이미 한다고 했으니까 그 것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에 부담이 있었어요.”
그의 말대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절대적인 믿음이 존재하지 않는 한, 시나리오를 보지 않고 작품의 출연을 수락하는 배우는 없을 거다. 주지훈은 민 감독의 어떤 부분에서 신뢰를 느낀 걸까.
“세월이 주는 신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때 물리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았어요. 구현해내야 하는 것에 비해 예산이 부족했거든요. 그럼에도 감독님과 호흡을 맞췄던 것을 계기로 평소에도 꾸준히 연락을 해오고, 만났던 것이 서로 간에 신뢰를 쌓을 수 있었던 계기가 아닌가 싶어요.”
그렇게 덜컥 수락한 작품 ‘간신’ 속에서 임숭재는 충신이자 간신으로서 연산군(김강우 분)과의 관계, 정치적인 조력자이자 자신을 속박하는 아버지와의 관계, 자신을 변화시키는 여인 단희(임지연 분)와의 관계를 동시에 이끌어가는 역할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역할을 영화의 ‘이음새’라고 해석했다. 극의 이음새가 되어야 하는 만큼 감독의 요구도 많았다.
“정말 많았죠. 아주 구체적인 주문이었어요. 단어 하나하나의 장단(長短)까지 따시더라고요. 정말 피곤하다니까요?(웃음) 그래도 어떡해요, 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투덜거리면서 했죠. 음, 난이도가 높은 게임을 한 느낌이랄까요? 임숭재는 주인공인 동시에 극의 화자 역할을 해야했어요. 대사가 많은 건 물론이고, 감독님이 요구하는 것도 많을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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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간신 스틸컷 |
그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면서 과거 힘들었던 민 감독과의 작업을 회상하기도 했다. 역시나 투덜거림이 동반 됐지만 그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보였다. 장난기가 발동한 그는 ‘간신’의 베드신을 언급했다. 대본 리딩 중반까지만 해도 없었던 베드신을 민 감독이 갑자기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정말 잔인하다고 생각했어요. 운동으로 몸을 만들고 정확히 두 달 있다가 찍었어요. 사실 액션 영화가 아니라 몸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굳이 몸을 만들라고 하시니까. 감독님이 상업영화라 여성 팬들에게 재미를 주시려고 한 거 같았어요. 이렇게 쓰실 작정이셨나 싶더라고요. 하하. 그런데 실제로 편집본을 봤는데 육체미에 관한 영화가 아니기에 그저 인물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는 장치로 쓰여 졌어요. 그 점이 참 만족스럽더라고요.”
연산군과 마찬가지로 간신인 임숭재 역시 실존 인물로, 그에 따른 부담감도 있었을 법 하다. 하지만 주지훈은 “전혀 없었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렇다고 임숭재라는 인물을 가볍게 보는 것도 아니다.
“‘간신’이 실존인물과 그 시대의 사회고발 영화가 아니잖아요. 하나의 장치로 사용한 것뿐이죠. 기본적으로 공부는 많이 했어요. 물론 고증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극은 극일뿐이에요. 그 시대의 아픔을 그리는 고발성 영화가 아닌, 대본에 나와 있는 변형된 것을 믿고 연기하는 게 배우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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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곽혜미 기자 |
그는 철저히 감독, 그리고 대본을 믿고 의지했다. 자신의 생각보다 대본에 충실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캐릭터를 완성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도 그의 투덜거림은 멈추지 않지만, 그만큼 매사에 ‘열심히’한다는 점이 바로 그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평소에 굉장히 직설적이기도 하고, 투덜거리면서 할 건 다 하는 스타일이에요. 감독님과도 스승과 제자 같은 느낌인데, 대본을 100번 보고 현장에서 놀고 있으면 ‘그럼 101번 봐’라고 말하는 식이죠. 부모 같은 마음으로 제가 잘 되길 바라는 거니까요.”
민 감독이 주지훈을 믿고 쓴 이유도 같다. 연기력이 탄탄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기본적으로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감독의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굉장한 완벽주의자로 이름난 민 감독은 ‘그래도 해볼게요’라는 자세로 연기에 임하는 주지훈의 태도를 높이 산 것이다.
“스스로는 늘 열심히 하고 있다고 자부해요. 최소한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죠. 그에 대한 평가는 어디까지나 관객들의 몫이지만요.(웃음)”
박정선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