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김진선 기자] “전 댓글 다 보는 편이에요. 물론 스트레스는 받지만 봐야 진짜 관객들 반응을 아니까요. 잘한 것보다 ‘잘 못한’ 것을 보려고 하죠. 중요한 것은 비판의 시선이거든요. 안 좋은 말은 기억에 오래 남잖아요. 지난 10수년간 영화를 하면서 비판을 극복하고, 또 다른 비판을 직면하고, 또 나아가는 것을 계속 하고 있어요.”
류승완 감독은 영화 ‘베테랑’ 개봉을 앞두고 시사회, 무대인사에 방송출연, 인터뷰 등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기사와 댓글을 다 본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그는 “자학 같나요? 물론 힘든 과정이죠”라고 덧붙이며 미소 지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잘 만들어야 하고, 잘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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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이주영 |
“소재주의에 함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재가 강하면 마케팅 하는 분들은 기대를 높이지만, 관객에게 그 충족을 만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기획 영화가 안고 있는 함정인 것 같다. 일반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취향이지만. 뻔한 소재인데 기가 막히게 만들어 내는 영화가 있다. 40년대 필름 느와르 고전 갱스터 영화 보면 대공황, 주류, 복수. 치정에 얽힌 탐정, 살인사건 등 뻔한 얘기인데 다 형사 변주한 내용인데다 재밌다. 소재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개성 있는 캐릭터와 드라마틱한 상황, 영화적 리듬과 시대성의 반영인 것이다.”
‘베테랑’은 현실과 맞닿아 있는 작품이다. 서도철 역을 맡은 황정민은 속이 뻥 뚫리는 욕을 내뱉기는 하지만 애잔한 눈빛과 궁금증에 찬 눈빛으로 인간다운 면모를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화가 치밀 정도로 얄미운 조태오 역의 유아인에게도 묘한 공감이 된다. 각각의 캐릭터에는 이유가 있기에 그 행동에 개연성이 따라 붙고, 현실성에서 느껴지는 공감이 더해져 더더욱 극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베테랑이 갖는 의미는 현 시대 임계점에 다다른 집단 무기력 증이 ‘탁’ 터져 나오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잘 만들어야 하고’ ‘잘 살아내야 한다’. 영화 반응에 대해 보는 것도 그런 의미다.”
“스토리보다 사람에 집중하죠”
류 감독은 작품의 스토리보다 ‘사람’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한 편에 사람들이 ‘왜 화를 내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때문에 더 취재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외계인 침공이라든지 괴물이 등장하더라도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삶이 묻어나야 하는 작품을 만들려 한다. 어떤 인생도 기획으로 보자면 흥미 없고 재미없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누구의 삶에도 드라마틱한 순간이 있다. 모두가 사연은 다 가지고 있으니까, 사람한테 시선을 놓고 보면 소재주의 작품을 넘어설 수 있다. 삶은 뻔하게 진행되지만, 심플하게 사실 안에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두고 작품을 보면 사건의 구조가 아닌 인물에 대한 반전이, 압박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풀린다. 플롯의 진행이 인물을 따라가는 듯한 잔기술이다(웃음).”
“영화감독은 좋은 선생님이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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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전환은 즐겨 쓰던 것들인데 ‘베테랑’의 몰입도가 좋으니까 눈에 띌 수도 있다. ‘짝패’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도 썼던 것들이다. 고전기에 쓰면 느낌인데 만화 같은 지점도 있다. 장면 전환은 작품을 환기시키고 몰입시키는 효과가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나 구로즈키 카즈오도 시청각과 신 전환을 이미지와 연결시켜 잘 활용하지 않았나.”
“‘베테랑’. 배우들 역량이 뛰어났죠”
류 감독은 ‘베테랑’에서 색다른 면모를 선보인 배우들에 대해 “배우들이 기회를 준 것이다”라고 겸손을 떨었다. 배우들의 또 다른 면을 끄집어냈다는 감독 본인의 만족보다, 배우들의 역량에 손을 치켜세워주는 것이 류 감독의 방식이었다.
“영화를 만들다 보면 통제가 안 되는 것이 배우다. 배우는 자기 몸이 악기인 셈이니, 자신이 표현하는 것 아닌가. 황정민, 유아인, 유해진, 오달수 등 역량이 뛰어난 배우들이니까 가능한 것이다. 그 어떤 재능이 있는 감독이라도 안 되는 배우들은 안 되지 않을까. ‘베테랑’에 출연한 배우들이 그 안에서 연기할 수 있는 이미지나 성품은 그 순간이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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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은 꿈은 취미로 하고 직업으로 삼지 말라고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에 푹 빠져 있던 한 남자는 어느덧 개봉 전부터 관객들의 가슴을 요동치게 만드는 감독이 됐다.
“직업이 됐을 때 스트레스 말로 표현을 못할 것이다. 스타를 바라보다가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갔을 때 깨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꿈이 현실이 되고 직업이 됐을 때 피로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무지개를 찾아갔는데 그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것을 해보지 않은 분들은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 있지만, 꿈이 꼭 직업이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류 감독은 “경제적 행위가 돼야 꿈을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며 뉴욕 프로그래머 친구를 예로 들기도 했다. 그는 “국가대표가 될 만한 사람이 세상에 얼마가 되겠나. 그러면 안 되는 사람은 패배자인가?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를 만들고 싶으면 어떤 일을 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지하철 공사를 해도, 카페 아르바이트를 해도 상관없다.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나에게 영화의 존재? 내게 영화는 영화 그 자체다. 여러 가지 의미가 될 수 있겠지만 삶과도 치환할 수 없는 그 자체다.”
김진선 기자 amabile1441@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