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훈 기자] 아이스크림, 계곡, 해변, 공포영화. 모두 뜨거운 여름에 어울리는 것 들이다. 팟캐스트에도 여름 특수를 노리는 방송이 있다. ‘무서운 이야기’는 초여름이 되면 나타나 서늘함을 선사하고 가을이 올 때 즈음 미련 없이 방송을 중단하는 그야말로 ‘쿨한’ 팟캐스트다.
‘무서운 이야기’ 멤버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이른 아침 녹음 장소인 한 스터디카페로 찾아가 봤다. 한 명의 여성과 두 명의 남성이 앉아 있었다. 셋 모두 음산함과는 거리가 먼, 장난기 가득하면서도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이른 아침의 무서운 이야기처럼 어딘지 모를 아이러니함이 그들에게도 묻어났다.
2시간여의 녹음이 끝나자 직접 한 에피소드의 녹음을 권했다. 그들의 권유에 따라 ‘제주도에서 군 생활을 했을 때의 일’이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녹음해봤다. 문장을 읽기 쉽게 다듬고 수많은 실수 끝에 녹음을 끝냈다. 약 20분 동안 걸린 이 과정은 호흡, 발음, 목소리 톤 등을 신경 써야했고 결과물은 8분짜리 녹음파일 하나였다. 왠지 모를 쑥스러움과 함께 그들과 인터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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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범규와 동네 친구예요. 옆집 사는데 둘 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사를 안했어요. 저는 주로 음향 편집을 하고 있습니다. 시즌 1때 한번 녹음을 했다가 호되게 욕먹고 나서는 안 해요.(웃음) 상처받지는 않았지만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녹음을 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안하고 있고요, 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디자인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표지 디자인도 제가 하고 있습니다.”(방윤호)
‘무서운 이야기’는 주로 두 명이 녹음을 한다. 군대 이야기를 비롯한 남자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이범규, 여자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권혜연이 맡는다. 대부분의 청취자들은 이범규의 목소리보다도 권혜연의 목소리를 선호한다. 그리고 이범규와 방윤호 역시 그녀의 목소리가 ‘무서운 이야기’에 최적화 됐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저는 여기서 여자 성우를 맡고 있는, 아 성우라고 하면 사람들이 또 욕해요. 여자 목소리 녹음자?(웃음) 아무튼 녹음을 맡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고요. 스물일곱 살입니다. 대학교 동아리 후배인 범규가 ‘공포이야기를 읽어주는 팟캐스트를 해보자’라고 해서 재밌겠다 싶어서 시작했어요. 처음에 와서 무서운 이야기를 읽는데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도 몇 번 하다 보니 요령을 터득하게 된 것 같아요.”(권혜연)
‘무서운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팟캐스트다. 일주일에 10분 남짓 되는 4~5개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여기에는 그저 무서운 이야기만 있을 뿐 멤버들의 토크, 팬들과의 소통은 전혀 없다.
“셋이 같이 이야기 해봤는데, 해줄 이야기도 없을뿐더러 저희가 말 주변이 없어서요.(웃음) 사람들이 NG모음 같은걸 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방송 끄트머리에 넣어주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걸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소통하고 있다고 느낄지는 의문이네요.”(권혜연)
팟캐스트에는 다양한 주제의 방송이 있지만 공포물을 주제로 한 것은 드물다. ‘괴담 X파일’ ‘괴담의 집으로 놀러 오세요’ 등이 있었지만 모두 잠깐 선보인 파일럿 형식이었을 뿐이다. ‘무서운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에는 목적성 없이 재미만을 위해 방송을 하고 있는 멤버들의 태도가 컸다.
“지금은 공포 팟캐스트가 없어요. ‘괴담의 집으로 놀러오세요’는 4회로 끝났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팟캐스트하는 목적은 유명해져서 책을 내고 종편가고, 종편에서 유명해져서 공중파 가는 거예요. 다들 떠들고 자기얘기 많이 하고 자신의 전문성을 이야기 하죠. 그런데 우리는 이름도 이야기 안하고, 왜하는지도 안 알려주고, 무서운 이야기를 읽기만 해요.(웃음) 이렇게 폐쇄적인 콘텐츠를 시도해서 굳이 우리와 경쟁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이범규)
“제가 친구들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는 말은 했었는데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아무도 듣지도 않아요. 저희가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것에는 목적성이 없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 듣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나도 이런 걸 해봤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있었고 기회가 생기니 해보는 거예요. 뭘 얻어가려는 건 전혀 없어요. 그냥 재밌게 녹음을 하고 사람들 반응 보고 그 정도뿐이에요.”(권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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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2를 시작하자마자 전체 순위 11위까지 올라갔었어요. 법륜스님과 송은이 씨 김숙 씨 위에 있었어요.(웃음) 여기에는 나름 저희 전략이 있었어요. ‘무서운’이라는 키워드를 쓰면 제일 먼저 저희 방송이 나오도록 ‘무서운 이야기’라고 제목으로 잡은 거예요. 뒤에 2015라고 붙인 건 우리 방송의 새로운 시즌이 시작됐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한 거죠.”(이범규)
“디자인 일을 하면서 느꼈던 게 ‘무서운 이야기’에 사용됐어요. 시즌에 맞는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데, ‘무서운 이야기’가 여름이라는 계절에 잘 어울렸어요. 적은 인풋을 제공하는데 아웃풋은 정말 커요. 올해에는 더욱 반응이 좋아요. 물론 악플도 함께 많아졌지만.(웃음)”(방윤호)
‘무서운 이야기’는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만을 들려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어폰을 끼고 들으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더블링과 입체적인 효과음이 몰입도를 더한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집’에서는 귀신이 귓속말을 하는 순간 한쪽 귀에만 귀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효과가 들어있기도 하다.
“맨 처음에는 효과음을 만들어 보려고 벽도 쳐보고 문도 열었다 닫아보고 별짓을 다했어요.(웃음) 그런데 결과물은 별로더라고요. 그냥 인터넷에 있는 거 쓰는 게 깔끔해요. 유튜브하고 구글에 많이 있습니다.”(방윤호)
“3D사운드가 제일 무서워요. 그냥 노크하는 소리를 녹음해서 틀면 그냥 문 두드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에요. 그런데 3D사운드를 입히면 진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느껴져요. 발걸음 역시 뒤에서 걸어오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 수 있어요. 이걸 편집할 땐 저도 무서워요. 고시원에서 혼자 살다가 ‘무서운 이야기’를 시작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웃음)”(이범규)
멤버들은 모두 살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무서운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무서운 이야기로 방송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방송으로 무서운 이야기를 고르는 노하우까지 생겼다.
“이야기 선택에는 분량이 제일 중요해요. A4용지 두 쪽에 방송시간 5~8분정도 되는 게 최적입니다. 일본 괴담들 중에는 귀신이 안 나오는 이야기가 많아요. 서양 괴담은 누군가를 실제로 죽이는 살인 이야기가 많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귀신이 나오는 걸 좋아해요. 가위에 눌리고, 의문의 목소리를 듣고 이런 것들이요. 일본 괴담을 하고 나면 ‘이게 끝이야?’라는 반응이 많아요. 그리고 다운로드 수가 이 모든 것을 증명하죠.”(이범규)
‘무서운 이야기’는 9월 중순 다시 휴식기에 들어간다. 그리고 시즌1에도 그랬듯이, 다음 시즌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그저 즐기기 위해 시작된 ‘무서운이야기’는 이제 팟캐스트 유일의 공포 콘텐츠 방송이 됐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저희 대신 ‘무서운이야기’를 진행할 분들을 모집했어요. ‘이거 가질 생각 없냐. 우리가 그냥 주겠다’라고 저희가 직접 연락을 준 곳도 있어요. ‘무서운 이야기’가 없어지는 게 싫을 뿐이었어요. 결국 아무도 가져가지 않아서 우리가 다시 하네요. 저는 많은 사람들이 팟캐스트를 통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혜연이 누나처럼 좋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도 있고요. 팟캐스트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들지는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팟캐스트 세상에서 놀았으면 좋겠어요.”(이범규)
“개인적으로 영화를 좋아하는 데 공포영화를 좋아하진 않아요. 영화 시장 쪽에서 공포 콘텐츠가 약세에요. 특히 국내에서 더 심하죠. 소비자들이 여름마다 공포 콘텐츠를 찾는 것은 그만큼 거기에 대한 욕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그걸 저희가 충족시켜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방송을 좋아해주는 팬들이 많아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방윤호)
“순위가 놀랄 정도로 올라갔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주게 되면서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말 한마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좀 더 잘하고 싶어요. 재밌게 들어줘서 정말 감사합니다.”(권혜연)
* ‘무서운 이야기 2015’
2014년 7월15일 경찰학교 귀신 편으로 시작. 2014년 9월18일 시즌1 종료와 함께 대신 방송을 진행할 사람을 찾았으나 아무도 지원하지 않음. 2015년 7월25일 시즌2 시작 후 9월 중순 시즌2 종료 예정.
*‘팟캐스트’는 애플의 아이팟(iPod)과 방송(broadcasting)을 합성한 신조어다. 주로 비디오 파일형태로 인터넷을 통해 콘텐츠를 제공한다. 안드로이드 기기에서는 ‘팟빵’ 어플리케이션으로, 애플 기기에서는 ‘Podcast’ 앱으로 즐길 수 있다.
유지훈 기자 ji-hoon@mkculture.com/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