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개그맨 유재석, 대적할 인물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예능감, 진행에 이어 인성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유느님’, 하지만 그도 처음부터 ‘유느님’은 아니었다.
지난 9일 한국갤럽은 유재석을 ‘2015년을 빛낸 코미디언/개그맨’ 1위로 선정했다. 지난 10월 29일부터 11월 21일까지 3주간 전국(제주 제외)의 만 13세 이상 남녀 1700명을 대상으로 올 한 해 가장 뛰어난 활약을 한 코미디언/개그맨을 두 명까지 물은 결과, 유재석이 51.3%의 지지를 얻어 4년 연속 1위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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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MBN스타 DB |
유재석의 1위 소식은 놀랄 일이 아니다. 2005년부터 ‘올해의 인물’ 코미디/개그맨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고, 2010년과 2011년엔 잠시 2위로 밀려났으나 2012년부터 다시 1위를 탈환해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꾸준히 그는 ‘국민 MC’로서 시청자의 곁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도 태어날 때부터 ‘천재 예능인’은 아니었다. 천하의 유재석에게도 긴 무명 생활이 있었고, 그에 대한 미담이 넘쳐나지만 한때는 ‘건방진 태도’로 미운털이 박힌 스타이기도 했다. 스스로의 과거를 떠올릴 때에도 유재석은 늘 “부족함”과 “교만함”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유재석의 변천사가 지금의 ‘유느님’을 만들어낸 셈이다.
◇ 카메라 울렁증, 긴 무명 생활
그는 1991년 KBS 제 1회 대학개그제에서 최승경과 함께 장려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유재석은 공채 개그맨 7기로 김수용, 남희석, 박수홍 등과 함께 개그맨 생활을 시작했다. ‘유머일번지’ 등의 작은 역할들을 맡으며 방송을 익혀갔다.
이 때 유명한 일화로는 장려상을 받을 때 유재석이 귀를 후비며 상을 받으러 가 선배 개그맨들로부터 타박을 들었다는 것이다. 유재석은 이후 당시의 사진을 볼 때마다 “1위를 할 줄 알았는데 장려상이라 섭섭해 하는 모습이다. 그 때는 참 교만했다”고 회상하며 부끄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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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해피투게더 방송 캡처 |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유재석의 무명시절은 꽤나 길었다. 1991년부터 ‘코미디 세상만사’의 ‘남편은 베짱이’를 통해 얼굴을 알리기 전까지 유재석은 카메라 울렁증 때문에 수없이 방송을 포기하려고 했다. 작년 7월 방송된 KBS2 ‘해피투게더3’에 출연한 유재석의 동기 김수용과 최승경, 박수홍, 남희석은 “(카메라 울렁증 때문에)실력 발휘를 못하는 유재석이 안쓰러웠다. 녹화가 끝나면 재석이를 위로하려 모두 모였다”며 “방송국에 나오지 않고 호프집 알바를 하는 걸 우리가 데려올 정도였다”고 입을 모았다.
약 8년 정도 이어진 무명 생활 동안 유재석은 ‘겸손’과 ‘초심’을 배웠다. 2010년 MBC ‘무한도전’ 팬미팅에서 유재석은 “무명 시절, 단 한 번만 개그맨으로서 기회를 주신다면 나중에 소원이 이뤄진 후 초심을 잃었을 때 누구 보다 큰 아픔을 주셔도 ‘왜 이렇게 가혹하게 하시냐’고 말하지 않겠다고 기도했다”며 자신의 간절했던 마음을 드러냈다. 2011년 ‘무한도전’의 ‘서해안고속도로가요제’에서 가수 이적과 함께 만든 ‘말하는 대로’에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무명 시절 당시의 마음과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의지가 담겨있다.
그런 유재석이 빛을 보게 된 것은 199년 KBS ‘서세원쇼’였다. ‘토크박스’라는 코너에서 그는 카메라 울렁증에도 특유의 입담을 선보여 많은 인기를 끌었고, 100회 특집에 다시 초대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서세원쇼’ 이후 그는 ‘TV는 사랑을 싣고’ ‘출발 드림팀’ 등의 보조MC로 활약하게 되는데, 특히 ‘출발 드림팀’에서 메뚜기 탈을 쓰고 진행을 해 ‘메뚜기’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 ‘동거동락’ ‘쿵쿵따’ ‘X맨’에 ‘무한도전’까지
유재석은 2000년 MBC ‘목표달성 토요일-스타서바이벌 동거동락’의 메인 MC에 발탁되며 보조MC에서 ‘주류’로 이동하게 됐다. 이 MC 자리는 故최진실이 “‘메뚜기’라는 개그맨이 있는데 정말 웃기다”며 PD에 강력 추천을 해 성사됐다는 일화가 있다. ‘동거동락’으로 그는 2000년 MBC 연예대상 MC부문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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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동거동락’에 이어 2001년 MBC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KBS ‘일요일은 즐거워-공포의 쿵쿵따’, 2003년 KBS ‘해피투게더-쟁반 노래방’, KBS ‘MC대격돌-위험한 초대’, SBS ‘실제상황 토요일-X맨’ 등의 MC로 나서며 인기 예능 프로그램들을 이끄는 MC로 성장했다.
‘동거동락’ ‘쟁반노래방’ ‘X맨’ 등 많은 게스트들을 이끌고 가야 하는 프로그램에서 유재석은 게스트들에 고루 관심이 주어지도록 유도하는 ‘배려형’ 진행을 선보이며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은 MC로 자리매김했다. ‘놀라와’ 같은 토크 프로그램에서 SBS ‘패밀리가 떴다’와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까지 유재석은 활동 영역을 넓히며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특히 유재석은 장수 프로그램을 이끄는 MC로도 유명하다. 2003년에 시작한 ‘해피투게더’와 2004년 MBC ‘놀러와’, 2005년 MBC ‘무모한도전’(‘무한도전’의 전신), SBS ‘런닝맨’까지 ‘장수’에 성공시킨 장본인이었다. 특히 ‘무한도전’은 지금의 유재석을 만든 소중한 기회로, ‘무한도전’의 폭발적인 인기와 더불어 유재석은 시청자 사이에서 ‘유느님’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예능계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게 됐다.
◇ 미담 부자, 유재석
2006년·2007년·2009년·2010년·2013년·2014년 MBC 연예대상, 2005년·2014년 KBS 연예대상, 2008년·2009년·2011년·2012년·2014년 SBS 연예대상을 수상한 유재석. 방송3사 석권에 한 해에만 대상을 각 방송사에서 휩쓸기까지 하는 대기록을 세웠지만, 그를 ‘유느님’으로 만든 건 이런 수상 이력이 아닌 파도 파도 끝이 없는 ‘미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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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은 힘든 무명 생활을 버텼기 때문에 개그맨 후배들의 고민을 이해하고 챙겨주는 개그계의 큰 선배가 됐다. 리포터 박슬기는 이전 인터뷰에서 “리포터를 하다가 하루는 사람들에 떠밀려 저 멀리 있는데 유재석 선배님께서 ‘슬기는 왜 거기 있냐, 이리로 와라’며 저를 잡아줬다”고 떠올리며 그 이후부터 유재석만 보면 눈물이 나온다고 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장동민과 전현무 또한 자신들이 힘들 때 유재석이 큰 도움이 됐다며 일화를 고백한 바 있다. 장동민은 한 종편 프로그램에서 친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찾아가 하소연을 했는데도 유재석이 다 들어줬다며 눈물을 흘렸고, 전현무는 KBS를 퇴사한 후 소속사 계약 문제로 힘들 때 유재석의 “선택은 네가 하는 것”이라는 조언을 듣고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고 유재석을 ‘멘토’로 꼽기도 했다.
그의 ‘미담’의 공통점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으로 ‘힘’을 준다는 것이다. 유재석을 멘토로 꼽거나 그에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는 연예인들은 전부 “아무 말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유재석이 정말 고마웠다”고 입을 모은다. 어떤 조언을 하기보다 열심히 들어주고 공감하는 유재석의 스타일은 TV 진행 스타일일 뿐 아니라 주변 사람을 챙기는 그만의 방식이기도 했다.
이외에도 유재석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개그맨 후배에 “꿈을 잃지 말라”며 수표를 건네주기도 하고, ‘무한도전-바보들의 전쟁’ 특집 당시 새벽까지 인터뷰를 하고 나온 박나래를 기다려준 유일한 사람이 되기도 했다. ‘무한도전’ 뉴욕 촬영 당시 오디오 막내 스태프의 새우잠을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는 유재석은 막내 스태프들부터 까마득한 후배들에까지 귀를 기울여 연예계의 큰 귀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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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이틀 전에도 유재석의 새로운 미담이 탄생했다. 디자이너 이학림이 유재석의 코디로부터 “작년에 선물 받은 야구점퍼를 판매하면 꼭 한 벌 사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며 반드시 구매할 것, 불편한 점이 있느냐 묻는다면 단 한 개도 없다고 전해달라는 것 등 유재석에 선물로 야구점퍼를 주고 싶었던 이학림의 마음을 예측이라도 한 듯 세세하게 코디에게 당부를 남겼다는 것. 이학림은 “이런 사람이 우리나라 넘버원 코미디언이라는 것이 다행스럽다”고 감탄을 했다.
이처럼 뛰어난 예능감만이 그를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것이 아니다. 그의 ‘초심’과 ‘겸손’, 주변 사람들을 아끼는 ‘의리’가 유재석을 오랜 세월 1인자 자리를 놓치지 않도록 했다.
10월 방송된 SBS ‘런닝맨’에서 유재석은 20년 된 양복을 들고 나와 “데뷔하자마자 12개월 할부로 산 양복인데, 이를 보면 신인 시절의 들뜨고 기쁜 마음이 떠올라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양복처럼 항상 유재석은 그의 데뷔를, 무명 시절을,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건강한 웃음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