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안녕하세요! 저는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정수경 역을 맡은 배우 이신성입니다. 사실 제가 드라마에서 이렇게 좋은 역할로 나올 줄은 몰랐는데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다들 제가 중간에 죽는 역인 줄로 알았는데 계속 나오니까 ‘아직도 살아있냐’고 농담을 할 정도였거든요.(웃음) 격려도 많이 해주시고요. 정말 이렇게 복 받은 현장에서 일해도 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좋은 기억’ ‘좋은 연기’만 얻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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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좋은 역, 정말 감사하게도 맡게 됐습니다
물론 어떤 역할이든 정말 다 중요하지만 드라마 촬영장에 이렇게 길게 나온 경험이 적은 저로서는 정말 큰 역할이었어요. 16회 중에 14회까지 나왔으니까 거의 ‘개근’ 수준이죠.(웃음) 제가 여기서 느낀 건 생각보다 고생하시는 분들이 너무나 많다는 거예요. 스태프들도, 배우들도 정말 엄청 고생하시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사고 없이 촬영 무사히 끝난 것만으로도 ‘참 큰일 해냈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제가 평상복 입고 있는 게 어색하시다고요?(웃음) 극중에서는 아무래도 정수경이 좀 음침한 캐릭터여서 더욱 그런 것 같아요. 다른 분들도 싸우는 신이 인상적이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액션신이 정말 많았어요. 정수경이 과거에 복싱 선수라는 설정이 있는데 중간에 대본을 받은 장면이 딱 ‘싸우는 신’이라 마침 연습하고 있었거든요.(웃음) TV 화면으로 보니까 실제로 한 것보다 장면을 정말 잘 만들어주셔서 제겐 ‘뜻밖의 수확’ 같아요.(웃음)
정수경에 대해 잘 몰랐을 때, 4회에 정수경이 투입되는데 그 전 회차 것도 꾸준히 대본을 읽으면서 제가 나름대로 정수경에 대해 상상을 한 적이 있어요. 재개발 피해자 중 한 명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나중에 대본이 나오니까 맞더라고요. 신기했어요. 제가 조금씩 알아가는 정수경이 신기하고 재밌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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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느끼는 정수경이요? 전 처음부터 ‘악역’이란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피해자란 느낌이 들었어요. 특히 마지막 촬영이 생각나는데요. 그날 비가 정말 많이 왔어요. 총 맞고 쓰러져있을 때에는 비가 정말 주룩주룩 오더라고요. 그 때가 제 완전한 마지막이었거든요. ‘죽었을 때 참 잘 어울리는 날씨다’ 싶더라고요. 정수경 같은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 같단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조금 밝은 에너지를 보였으면 좋았을 텐데 끝까지 어둡게 살다가서 안타깝고 안쓰러웠어요.
정수경이 한 번도 안 웃은 것 같다고요? 아니에요, 딱 한 번 웃었어요.(웃음) 회상신이었는데 그 때 촬영 스케줄 상 제가 수염을 자를 수가 없어서 머리랑 후드로 거의 가려서 잘 안보였을 거예요. 누나와 동네 사람들과 환하게 웃는 장면인데 사람들이 ‘수경이가 매일 사람 죽이다가 이렇게 웃는 걸 보니 이상하다’고 함께 웃더라고요. 그 웃는 게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던 정수경이란 캐릭터가 아직도 많이 안타까워요.
◇ 유준상 선배님을 비롯한 모든 배우 분들, 감사했습니다
제가 촬영하면서 정말 놀란 게 다들 너무나도 잘해주세요. 주연 분들은 스케줄 표 보면 정말 첫 촬영부터 끝 촬영까지 빽빽하거든요? 그런데도 현장 분위기를 정말 화기애애하게 주도하시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히 이런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실력이 다른 게 실력이 아니구나’란 생각도 했고요. 많이 힘들고 문제가 생길 법한 신들도 선배님들의 배려가 있어 잘 끝났고요, 그런 배려들이 잘 화면에 묻어난 것 같아서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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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유준상 선배님과는 공연을 하다가 알게 된 인연이 있거든요. 제가 극중에서 유준상 선배님의 오른팔이기도 하고, 제가 캐스팅된 걸 알고 계셨기 때문에 작품 들어가기 전에 일부러 정수경에 대해 더 물어봐주셨더라고요. 그리고 대본이 아직 나오지 않아 제가 혼자서 상상의 나래조차 펴지 못하고 걱정하고 있을 때 ‘귀띔’을 해주셨어요. 정말 가뭄의 단비같이.(웃음)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
유준상 선배님께서는 제 소속사 선배님이기도 하지만, 소속사 이런 걸 떠나서 자신과 연이 닿은 후배들은 힘껏 도와주려고 하시는 분이에요. 이미 주변에서 그런 ‘사례’가 있었다고 많이 들었던 지라 그냥 ‘의리 넘치는 분’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 ‘의리’가 제게까지 올 줄이야! 정말 깜짝 놀라고 감동했죠.
특히 이렇게 드라마에 본격적으로 나온 건 처음이거든요. 카메라가 어색할 법도 한 저를 다른 배우들이 잘 융화시켜줬어요. 많은 배우 분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현장에 적응할 수 있었어요. 특히 중간 투입이라 더욱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다른 배우 분들이 이렇게 좋은 현장 만날 수 있어서 이게 ‘복’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운이 좋았단 생각을 참 많이 하고 있어요.
◇ 고등학교 때에 우연히 하게 된 공연, 지금까지 왔어요
전엔 운이 좋아서 공연에 몇 번 서기도 했어요. 고등학교 때 우연히 공연을 하게 됐는데 전에는 그렇게 ‘골방’에 들어가서 무언가를 치열하게 준비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 경험을 하게 되니까 저절로 이 길을 꿈꾸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연극영화과 가서 좋은 분들 많이 만나고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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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하게 된 이유요? 제가 대학교에 다닐 때 한창 뮤지컬 붐이었어요. 노래하고, 연기하고, 몸 쓰는 걸 배우는 뮤지컬 트레이닝이 각광받고 있을 때었고요. 저도 참 매력있는 직업이라 생각이 들어 ‘반했죠’. 그렇게 연습하다가 졸업할 때 선배님들과 함께 좋은 작품에 참여할 수 있게 됐어요.
그 이후에는 연극을 또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연극 오디션 꾸준히 보러다니곤 했어요. 막연하게 매체 쪽의 연기도 매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도전해보고도 싶었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걸 느꼈어요. 전에는 운이 닿아서 아는 분들만 만났는데 그 이후에는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됐죠. 무언가 조그만 배를 타고 물줄기를 따라 가다가 바다를 만난 것처럼요. 오래한 건 아니지만 아직도 이런저런 사람들을 보면서 많이 느끼고 있고요, 아직도 한참 느껴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가 TV에 좀 늦게 나왔다고요? 전 지금이라도 나온 게 다행이 아닐까 싶은데.(웃음) 제가 못 나왔으면 못 나왔던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거 에요. 부족함이 분명 있었을 거고. 전 어린 나이가 아니라 액션을 배우러 가거나 하는 트레이너 분들이 저보다 나이가 한참 아래 분들이시거든요. 그런 분들을 바라보면서 전 그런 생각을 해요. ‘아, 좀 늦은 나이인 나를 누가 이렇게나 액션을 가르쳐주겠나.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하고요. 그렇게 ‘바꿔 생각하면’ 전 참 운이 좋은 게 많아요.(웃음)
그리고 전 또 하나 느낀 게요. 제가 무용을 전에 했었는데, 친한 분께서 ‘다리 굳기 전에 발차기나 한 번 해봐’라고 쓱 얘기해주셨거든요. 그게 계기가 돼서 이것저것 운동을 했어요. 그게 2년 전부터 했으니 꽤 됐죠. 그런데 이번 작품에 딱 ‘전직 권투선수’ 캐릭터를 맡게 됐잖아요. 몸의 형태가 다부져야 했는데 제가 알게 모르게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죠. 운이 정말 좋지 않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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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해준 이야기를 허투룰 듣지 않고, 제가 귀담아 들었다는 게 지금에는 이렇게 큰 역할을 해줬어요. 그게 제게 신의 한 수가 됐고요. 아마 그 전엔 제가 그런 조언들을 허투루 듣고 안 했겠죠. 이런 일을 겪고, 작품을 끝내면서 ‘아, 작품이 정해지는 것보다 그 사이의 시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가 중요하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됐어요. 늦어진 게 아니라 ‘준비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주시기만 한다면, 어떤 작품에라도 도전해보겠습니다
‘피리부는 사나이’의 정수경은 정말 여러모로 감사한 역할이었어요. 정수경이란 이름도 참 예뻤고요, 역할도 참 좋았고요. 어떤 사람이라도 탐났던 역할이었을 거에요. 코미디 빼고 다 있는 역할이었거든요. 평생에 한 번 담을까 말까 한 멋진 독백도 많았고.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았지만, 이제 끝났으니 거기에 취하면 안 되겠단 생각을 해요. ‘좋은 기억은 빨리 잊어야’ 된단 말을 떠올리고 있죠.
다만 무슨 작품을 주시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소화해내겠지만, 언젠가는 밝은 에너지로 갈등을 승화시키는 그런 역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작품인데, ‘좋은 게 좋은 것’이란 말처럼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주는 캐릭터로 그런 따뜻한 느낌을 드리고 싶어요.
일단 올해는 ‘피리부는 사나이’로 정말 큰 역할을 했는데요, 여기에만 치중하는 게 아니라 제가 그동안 지내왔던 대로 꾸준히 준비를 할 예정이에요. 역할에 욕심 부리지 않고, 주어지는 그 어떤 작품에라도 도전해보고 싶고요. 저한테는 그런 게 사는 거예요. 역할에 한정을 두고, 멋있는 역할에 취해가지고 멈춰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정수경이 아니라 ‘김수경’이 주어져도 최선을 다 해서 해보겠습니다.(웃음)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
사진제공=나무엑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