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저를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데 힘을 얻었죠.”
해이(Hey). 혹시 이 이름이 낯설다면, 이 노래는 어떨까.
“널~ 사랑하나봐~ 사랑에 빠졌어~ 기분 좋은 느낌이 변함 없길 바래~”
어떤 미사여구도, 꾸밈도 없이 오직 순수한 감성 자체로 15년 전 가요계를 뒤흔든 바로 그 곡. ‘Je T'aime(쥬뗌므)‘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여전한 가치를 입증한 명곡의 주인공이 바로 가수 해이다.
해이는 최근 싱글 앨범 ‘최고의 순간 La Chance!’을 발표했다. 가요계 잇딴 컴백 러시 속에도 소리 없이 오직 음악으로써 가요 팬들 사이에 스며들었다. ‘괜찮아 사랑이야’ 등 드라마 OST 작업을 통해 음악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앨범은 2010년 ‘Vegetable Love‘ 이후 무려 6년 만이다.
그간 꾸준히 남편(조규찬)과 곡 작업을 해왔지만 본격적으로 앨범 제작이 급물살을 탄 건 지난 3월 JTBC 예능 ‘슈가맨이 돌아왔다’ 출연이 계기가 됐다. 그는 “언제 앨범을 내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슈가맨’을 계기로 시너지가 생겼다”고 말했다.
해이는 “‘슈가맨’의 러브콜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워낙 오랫동안 TV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데다 1, 2집 활동 당시에도 TV 활동을 많이 안 했었기 때문이다.
“사실 재미도 없는 사람이라 (출연) 고민을 했어요. 하지만 불러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이었고 이런 좋은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모처럼의 TV 출연을 앞두고 해이는 “피부과도 가고 노래 연습도 열심히 했다”며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녹화 전까진 기대와 걱정이 공존했다. 해이는 “‘쥬뗌므’를 부르며 처음 등장할 땐 스스로도 어안이 벙벙하고 너무 떨렸는데 유재석, 유희열 선배님이 잘 해주셔서 편안하게 녹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슈가맨’의 반향은 꽤 컸다. 그는 “솔직히 별 기대는 안 했다. 워낙 오래됐고 TV 활동을 안 해서 모르는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다들 긍정적으로 바라봐주시고 ‘쥬뗌므’도 너무 좋은 추억으로 생각해주셔서 많이 놀랐고, 감사했다”고 말했다.
자신을 다시 대중 앞으로 이끌어준 ‘쥬뗌므’에 대해서는 “2집 땐 어딜 가도 그 노래를 불러야 하니 ‘그만 부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지난해 오랜만에 무대에서 불렀는데 정말 훌륭한 곡이더라”며 “이 곡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그렇게 해이는 음악으로써 많은 이들의 추억을 소환했고, 그 스스로도 소환됐다. 그리고 6년 만에 신곡 ‘최고의 순간’을 내놓으며 추억의 가수에서 현재 진행형 가수로 돌아왔다.
뒤늦게 컴백 소감을 묻자 해이는 “아무 생각 없다”고 선한 표정으로 웃으면서도 “이렇게 노래를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한 일이다. 오랜 공백에도 기다려주신 분들이 계시다는 것도 정말 감사하다”고 감격을 드러냈다.
"괜시리 허탈한 맘이 드나요/시간만 훅 지나가버렸나요/하지만 최선을 다 한/그댈 난 알죠"
데뷔 3년 만인 2004년 조규찬과 백년가약을 맺은 뒤 아들을 낳고 가수 활동을 중단, 육아에 전념하던 중 좋은 기회를 통해 뮤지컬을 접하고, 남편의 유학길을 따라 나섰다가 본인 또한 학업을 이어가게 된, 결혼 13년차 주부이자 엄마인 그의 솔직한 속내는 도입부만 봐도 어떤 마음인지 짐작이 간다. 그는 “30대 중후반 들어서면서 느끼게 되는 여자들의 고민”이라며 말을 이었다.
“그동안 무언가 쌓아온 것 같은데, 주부면 주부로서 워킹맘이면 워킹맘으로서 해온 것 같은데 왠지 허탈한 마음이 드는 거죠.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늘 최선을 다해온 것이었어요. 내일을 위해 산다기보단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행운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chacce라는 단어가, 순간이라는 뜻도 있지만 행운이라는 뜻도 있거든요. 지금의 나를 사랑해주자는 이야기를 담은, 저 스스로에게 해주는 이야이예요.“
해이가 쓴 가사를 본 남편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는 “남편과 가사를 쓰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남편도 놀라 하더라. 허탈한데 뭔지 모르겠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이게 어떤 고민이었는지 정리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과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할 수 있었다“며 “곡 작업을 하면서 치유를 많이 받았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또 다른 수록곡 ‘언제나 내 마음 속에’는 해이가 아버지를 떠올리며 쓴 곡이다. “부모님이 연세 드시는 게 남의 일이 아니고 내 일이 되다 보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언젠가 이별할 수도 있겠다는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며 고마움을 담아 만들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따뜻함과 뭉클함이 공존하는 가사는 해이의 꿀 떨어지는 목소리를 만나 또 하나, 진주같은 곡으로 완성됐다. 그냥 지나치기에 왠지 아쉬운,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담은 해이의 마음을 그대로 전해본다.
“멀어지는 그대를/한동안 바라보죠/다신 못 볼 것만 같아서/함께했던 나날들/함께 나눴던 눈물/이젠 내 안에 품어요/안아요/고마워요/그대 때문에 행복했어요/나의 아름다운 사람/사랑해요 최선을 다한/그대를 알죠/나의 자랑스런 사람/언제나 내 마음속에/언제나/내 마음속에“
psyon@mk.co.kr/사진 미스틱엔터테인먼트[ⓒ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