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배우 김명민. 제공|CGV아트하우스 |
지난 20여년간 오로지 한 길만 걸어왔다. 지친 기색도 없이 올곧게, 치열하고 지독하게. 그 결과, 한 작품 속 세 개의 단역을 연기하던 공채 탤런트에서 이제 연기 지망생들 사이에서는 닮고 싶은 ‘롤모델’ 0순위가 됐다. 완벽주의에 가까운 연기에 대한 집념과 욕심,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연기 본좌’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배우 김명민(45)을 두고 하는 말이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스크린 속 카리스마와는 동떨어진, 편안하면서도 유쾌함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영화 ’하루’에 대한 만족도를 물으니, “내가 출연한 영화에 통상 냉정한 편인데 이번 영화는 잘 나왔다. 물론 스스로의 연기에 대해서는 ‘더 잘 할걸’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어려운 과정을 무사히 완주했다는 점에서 뿌듯하고 결과물도 만족스럽다”고 답했다.
영화 ‘하루’(조선호 감독)는 매일 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잃는, 반복되는 지옥을 끝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리 스릴러다. 김명민은 극 중 유일한 피붙이인 딸을 눈앞에서 잃는, 벗어날 수 없는 지옥 같은 하루에 갇힌 남자로 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김명민은 “촬영 당시에만 해도 너무나 혹독해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촬영했는데 완성본을 보니 뭉클해지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나왔더라. 배우들의 호흡도 좋았지만 역시나 연출의 힘이 느껴졌다”며 뿌듯해했다.
![]() |
↑ 배우 김명민. 제공|CGV아트하우스 |
그는 “일단 찍는 내내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장면을 극한의 감정 상태에서 계속 다르게 찍어야 하다 보니 자칫 잘못하면 바보처럼 보일수도 있겠더라. 타임루프(time loop, 등장인물이 동일한 기간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라는 장르에 처음 도전해 봤는데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이어 “무엇보다 연출의 힘이 굉장히 중요한 장르라는 걸 느꼈다. 시나리오상으로는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로운데 이것을 긴장감있게 영화화하기에 힘든 부분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타임루프 소재의 영화는 그동안 많이 있었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는 느낌이 있었어요. 할리우드의 경우 자본력이 되니까 단순한 드라마를 가지고서도 각종 장치로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의 경우는 그렇지 않으니 드라마로 승부해야 하죠. 그런데 그 부분이 늘 아쉬움을 남겼어요. 우리 작품의 경우는 그 부분에 굉장히 집중을 잘 한 것 같아요. 촘촘한 인물 관계가 밀도 있게 짜여 있기 때문에, 드라마의 힘이 좋아 안정감 있게 완성된 것 같아요. 제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동안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연기를 펼쳐온 그이지만 이만큼 머릿속으로 고민하고 계산하고 준비해간 적은 처음이란다. 그는 “반복되는 장면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까. 스스로 어떻게 몰입해야 하나. 기회는 단 하루인데, 단 한 번인데 어떻게 붕어빵 찍어내듯이 반복되는 촬영 속에서 전혀 다른 그림을 만들어낼까 고민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한 자리에서 7~8번을 같은 장면으로 찍어내는데 거의 고문 수준이었어요. 나중엔 스스로 내 연기가 맞는지 흔들리기도 하고 많이 지쳤죠. 다행히 감독님이 배우들을 전적으로 믿어주시고 기다려 주셨기 때문에 모두가 각자의 패턴대로 완주할 수 있었고, 배우들 간 호흡도 굉장히 집중력이 높고 좋았어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각자가 무엇을 서로에게 어떻게 해줘야할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흥행 여부에 대해서는 “하늘의 뜻”이라며 수줍은 듯 손사래를 치는 그였다. 이어 “나름대로는 작품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현장에서도 분위기를 잘 이끌어가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내 선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모두가 고생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여러 부분에서 예민하고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조금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어떤 실수를 하거나 그것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면 용납하지 못하고 굉장히 힘들어 했는데 이젠 그렇진 않아요. 무엇보다 현장에 가면 이젠 선배층이다 보니 다른 의미에서 강한 책임감을 갖게 됐죠. 선배로서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 감독과 더 긴밀히 대화하고, 스태프들을 챙기고 현장을 더 에너제틱하게 이끌어 가야 한다는, 그런 책임감이요. 그런 면에서 우리 작품은 굉장히 좋은 호흡이었고, 그것이 작품에 잘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하하!”
‘하루’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은 시간 속
kiki202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