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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캔스피크’(감독 김현석)는 첫 장면부터 관객을 속인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두 컴컴한 상가 골목에서 어떤 남자가 망치를 끌더니 상가 외벽을 내리친다. 이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 ’스릴러인가? 상영관을 잘못 찾았나?’ 생각할 때쯤 반듯하고 고지식한 것 같은, 전철 속 민재(이제훈)의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또 그 앞에 땀을 삐질 흘리는 남성 덕에 영화는 코미디로 바뀐다.
아침 9시 5분 전 구청 앞에 도달한 민재는 조용한 구청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9시 3분 전이 되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공무원들이 떼로 나타난다. 이후 민원의 달인(?) 옥분 여사(나문희)가 등장하고, 구청 직원과 상인들을 괴롭(?)히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로등 불이 아직 안 들어온다’고, ’입간판이 불법으로 세워졌다’ 등 정말 다양한 민원을 내고, 급기야 민재에게는 영어도 가르쳐 달란다. 물론 오직 원칙과 절차가 답이라고 생각하는 9급 공무원 민재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지만 나옥분 여사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옥분과 민재의 옥신각신 다툼과 구청 및 시장 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웃음과 재미, 소소한 감동 정도 전하겠구나’ 생각할 때 영화는 또 방향을 튼다. 옥분이 영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이유가 1차원적 혹은 2차원적인 게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 즈음 이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본색을 드러낸다. 제목이 이중적으로 쓰였다는 것도 남다르게 다가온다.
’아이 캔 스피크’는 역사 문제를 정공법이 아니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그린다. 측면 공격이다. 혹자는 ’어떻게 이런 엄중한 문제를 이렇게 다룰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할 법도 하지만 이야기가 풀려가면서 나문희가 전하는 과거의 억압과 아픔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이될 만하다. 의심할 필요가 없다. 통한의 눈물을 흘릴 수도 있으니 준비를 하라고 해야겠다.
전개 방식이 나쁘지 않다. 아픈 과거지만 그리 무겁지 않고, 그렇다고 또 한없이 가볍게만 그리지 않았다. 후반부에 묵직한 울림과 요동치는 심장 박동소리, 훌쩍이는 옆자리 관객과 마주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역사적 사실과 또 실제 있었으나 해결되지 않은 일을 모티프로 영화적 재미와 함께, 잊으면 안 되는 메시지를 조화롭게 배치했다.
배우 나문희의 연기는 언제봐도 믿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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