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역전 하나만을 위해 신혼집 전세금까지 털어 서울 압구정동에 DVD방을 차린 두식(신하균). 하지만 언제적 압구정동 상권인가. DVD방 호황은 멀티방 등의 등장으로 물 건너간 지 오래됐다.
손님 없이 파리만 날리는 두식의 가게. 대리운전까지 뛰며 월세 내느라 등골이 휜다. 1억원의 권리금과 보증금까지 다 받아 챙겨 나가는 게 인생의 목표가 됐다. 하지만 쉽지 않다. 후임 계약자가 나타나지만 받을 수 있는 권리금의 숫자는 점점 떨어진다.
DVD방 알바생 태정(도경수)도 학자금 대출에 시달리는 불우한 인생이다. 알바 임금도 몇달째 밀린 그는 며칠 마약을 보관해 달라는 검은 거래 제안을 받고 DVD방 '7호실'에 마약을 감춰둔다.
가게 장사가 잘 되는 것처럼 꾸미려는 두식. 중국 동포 한욱(김동영)까지 새 알바로 고용하고 치밀하게 준비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과 맞닥뜨린다. 가뜩이나 되는 일이 없는데 더 꼬이고 말았다. 태정 역시 두식의 일에 연루되고, 이제는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엮여 버린다.
영화 '7호실'은 출구 없는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 두식(과 태정)을 세세하게 들여다본다. 두식과 태정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 우리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멀리서 보면 갑과 을의 관계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두 사람 모두 을과 을이다. 혹은 병과 병일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할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막혀 날개가 꺾여 버린 안타까운 인생이 관객의 관심을 높일 만하다.
어둡고 답답한 설정과 상황들로만 보이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들이 한국 사회를 풍자하는 동시에 웃음도 머금게 한다. 후임 계약자로 나선 교감 선생님(김종구)이 "평생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하는데 그의 눈빛과 미소가 의구심을 키우는 요소로 작용한다. 도대체 누가 성실하게 안 살아 왔겠는가.
영화는 공포, 액션, 드라마라는 장르적 요소도 한 데 섞어 새로운 시도를 한다. '10분'이라는 단편을 통해 호기롭게 시간의 의미를 사용했던 이용승 감독은 이번에는 한정된 공간이 주는 묘미를 제대로 살려냈다. '7호실'이라는 제목에서 '7'이 전하는 행운의 의미가 열악한 장소와 맞아떨어지면서 최악의 불행한 공간이 되는 점이 특히 흥미롭다. 좁은 공간에서 밀도 높게 벌어지는 일들은 관객을 몰입시키는 지점이다.
자영업자의 애환과 학자금 대출로 고생하는 청년 세대의 이야기도 적절하게 녹여냈다. DVD방, 7호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다소 과장된 감이 없지 않으나 수긍이 가기도 한다. 미신을 믿는 두식의 현실적 상황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신하균은 역시 이번에도 연기로 승부하고, 도경수도 장단을 잘 맞췄다. 진지한 표정으로 나사를 풀고 조이는 도경수는 인생이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마지막 장면에서 터져 버린 신하균의 눈물은 인생의 쓴맛 혹은 헛헛함을 비유한다
영화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일지라도 멀리서 보면 희극이 될 수 있는 '불변의 진리'를 교감 선생님이 등장하는 에필로그를 통해서도 보여준다. '7호실'이 전하는 결말의 메시지가 한없이 씁쓸하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100분. 15세 이상 관람가. 15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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