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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는 건 다 넣었는데도 신기할 정도로 밍밍하고 심심하다. 없는 건 없는데 그렇다고 제대로 있는 것도 없다. 딱히 나쁘지도, 시원하게 좋지도 않은, 어떤 명쾌한 인상이 남질 않아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과도한 멋은 아닌데 그렇다고 소박하거나 자연스럽지도 않으니, 일단 높은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것만은 확실하다.
기대 속에서 베일을 벗은 ‘명당’은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땅의 기운, 바로 ‘명당’을 차지하려는 이들의 대립과 그릇된 욕망을 담은 사극이다. ‘관상’ ‘궁합’에 이은 역학 3부작의 피날레.
천재 지관 박재상(조승우)은 ‘명당’을 이용해 나라를 지배하려는 장동 김씨 가문의 계획을 막으려다 가족을 잃게 되고 치밀한 복수를 계획한다. 그리고 그의 앞에 세상을 뒤집고 싶은 몰락한 왕족 흥선(지성)이 나타나 함께 장동 김씨 세력을 몰아내자고 제안한다. 결국 이들은 ‘명당’에 집착하는 김좌근(백윤식) 부자에게 접근해 충격적인 비밀을 알아내지만, 두 명의 왕이 나올 천하명당의 존재를 알게 되고는 서로 다른 뜻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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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잖게 놀란 건 바로 지성. '혈의누'(2005) 이후 오랜만에 사극에 도전하는 지성은 등장부터 다소 튄다. 브라운관에서는 자타공인 ‘연기신’으로 두터운 신뢰를 얻어온 그이지만 ‘명당’에서의 모습은 기대에 한 참 못 미친다. 호흡이 길어질수록 발음과 발성이 어색하고도 부정확해 대사 전달에 있어 불편함을 자아낸다. 넘치는 에너지와 열정이 느껴지지만 힘이 너무 들어간 탓인지 다른 캐릭터들과는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한다. 감정 변화의 진폭이 가장 큰 인물이지만 강약조절의 실패로 드라마틱한 반전이 제 힘을 발휘하진 못한다.
권력을 빼앗긴 왕, 헌종으로 분한 이원근 역시 어색한 대사 처리로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타고난 장사꾼이자 박재상의 절친한 벗인 구용식(유재명), 김좌근의 아들인 김병기(김성균), 조선 최고의 대방 초선(문채원)의 경우는 ‘이런 배우들이 이 정도의 분량으로 출연하는데도 이렇게만?’이라는 물음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을 정도로 과도하게 안정적으로 그려진다. 뭔가 새로워지려다 만, 더 나아가려다 만 상태로 어정쩡한 캐릭터로 완성돼 구멍 없는 연기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못한다.
영화는 ‘풍수지리’(땅의 성격을 파악해 좋은 터전을 찾는 사상)라는 흥미로운 소재에 ‘흥선대원군이 지관의 조언을 받아 2명의 왕이 나오는 묏자리로 남연군의 묘를 이장했다’는 역사적 기록을 더해 영화적 상상력을 입혔다. 여기에 명당을 통해 욕망을 채우려는 인물들 간의 암투를 메시지로 현대 사회와의 소통을 시도한다. 조승우 지성 유재명 문채원 김성균 등 믿고 보는 라인업은 또 어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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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피날레에 대한 감독의 깊은 고민이 오히려 독이 됐을까. 힘을 뺀 편안함도, 작정한 멋부림도 아닌, 진부함과 새로움 사이의 그럭저럭 볼 만한 밋밋한 사극으로 완성됐다. 9월 19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26분.
kiki202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