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납치되자 언니는 분노한다. 성난 언니는 동생이 선물한 빨간 미니원피스를 입은 채 ‘아찔한’ 복수에 나서고, ‘교복’을 입은 동생은 끊임없이 마수에 짓밟힌다. 온몸을 내던진 이시영을 비롯해 열연을 펼친 모든 배우들을 과감히 희생시킨, 분노 아닌 분노 유발 액션이다.
영화 ‘언니’는 사라진 동생 은혜(박세완)의 흔적을 찾아갈수록 점점 폭발하는 전직 경호원 인애(이시영)의 복수극을 그린다. 과잉 경호로 1년 6개월간 감옥에 다녀 온 인애는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동생과 관련된 모든 암울한 과거를 뒤로 한 채 평범한 삶을 꿈꾼다. 하지만 그 바람은 단 하루 만에 무너져버리고, 납치된 동생의 행적을 쫓으며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다.
“한 동네에서 일어난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감독의 말대로 영화 속에는 여러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지속적으로 그려진다. 진부한 악당, 헐거운 전개, 말뿐인 메시지 위에 폭력적 장면만이 난무하니 안타까움과 불편함, 피로감을 넘어 분노를 유발할 지경에 다다른다. 그 불편함의 근원을 응징하는 ‘언니’ 이시영조차 등장부터 퇴장까지 붉은 미니드레스 한 벌로 온갖 고난이도 맨몸 액션을 펼치니 통쾌함은 반감된다. “변화의 원동력을 위해 불편함을 자아낼 소재를 선택했다. 여성의 상품화를 최대한 배제했다”는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스크린을 꽉 채우는 건 불편한 연출로 인해 드러난 한계뿐이다.
피해자도 응징자도 단 한명. 그녀를 괴롭히는 비행 청소년들과 나쁜 동네 아저씨들, 용문신을 한 사채업자와 불법 업소 운영자와 부패한 정치인까지. 늘 봐오던 진부한 악당이 끝없이 등장하고 이것을 응징하는 복수의 폭력이 무한 반복된다. 후반부로 갈수록 선명하게 남는 건 극한의 불쾌감이다.
감독은 “‘악과 홀로 싸워가는 주인공’을 보면서 관객들은 주먹을 불끈 쥘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꼭 그 이유만으로만 주먹을 쥐게 되진 않는다. 어쩌면 그 주먹을 마음껏 휘두르는 ‘언니’가 부러워질지도 모른다. 1월1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9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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