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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 포스터 사진=왓챠플레이 |
[MBN스타 김노을 기자] 호기심 강한 여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모험길에 올랐다. 모든 건 사랑에서 비롯됐다.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이하 ‘리틀 드러머 걸’)은 1979년, 이스라엘 정보국 비밀 작전에 연루되어 스파이가 된 배우 찰리와 그녀를 둘러싼 비밀 요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첩보 스릴러다. 영화감독 박찬욱의 첫 TV 미니시리즈로 지난해 영국 BBC에 편성됐다. 지난 29일 왓챠플레이를 통해 전편 공개된 감독판은 여러 이유로 편집됐던 장면들이 모두 담겼다.
정보국 고위 요원 마틴 쿠르츠(마이클 섀넌 분)는 이스라엘의 대사관 관저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자 조사에 착수한다. 유럽 전역에서 행해진 국제적 테러 사건의 중심에 팔레스타인 혁명군이 있다고 결론 내린 그는 테러리스트 조직의 깊은 곳으로 침투하기 위한 대담한 작전을 기획한다.
바로 이 ‘대담한 작전’에 투입되는 인물이 무명 배우 찰리(플로렌스 퓨 분)다. 찰리 극단은 익명의 후원자 초청으로 그리스를 방문, 찰리는 그곳에서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매력을 느낀다. 이후 묘령의 남성의 정체가 이스라엘 정보국 모사드 비밀 요원 가디 베커(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분)임을 알게 되고, 찰리는 현실 세계의 스파이가 되어 테러리스트를 연기하라는 제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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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 스틸컷 사진=왓챠플레이 |
‘리틀 드러머 걸’은 원형적인 첩보물이지만 전형적이지 않다는 게 성취다. 그동안 스파이·첩보물은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스파이 영화의 여성 캐릭터는 이른바 ‘본드걸’로 대변되어 섹시하거나 매혹적인 곁다리 서사로 머물렀다. 하지만 ‘리틀 드러머 걸’의 찰리는 스스로 서사로 존재, 빠른 템포로 극을 전개시킨다. 아울러 기존 첩보물과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차이는 첩보 작전 안에 진짜 사랑이 있다는 점이다. 찰리를 움직이게 하는 베이스는 내면에 자리 잡은 사랑이다.
찰리는 리얼과 픽션을 오가며 정체성 혼란을 느낀다. 또 상상한 것보다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안 뒤 기로에 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디를 향한 사랑을 자각한 순간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지고, 이스라엘 정보국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성과를 얻는다. 테러리스트들의 신임을 얻으며 거점지인 레바논까지 진입해 비밀에 싸여있던 파트메의 존재를 확인한 것. 목숨을 건 테스트까지 무사히 통과한 찰리는 본격적인 테러리스트 훈련을 받는다. 예사로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가는 그의 얼굴에는 늘 긴장감이 서려있지만 대담한 성질과 기지, 모험심, 능청스러운 연기로 모든 걸 커버한다.
찰리의 활약은 좀 더 높은 곳까지 뻗어나간다. 찰리는 극 중 ‘최종 보스’로 여겨지는 칼릴의 거주지를 알아내고, 그의 신임을 받아 폭탄 테러를 시행하라는 명령까지 받는다. 물론 정보국과 찰리의 협업으로 이 폭탄 테러는 또 하나의 연극처럼 마무리된다. 하지만 마틴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찰리를 칼릴의 여자로 만들려 한다. 이 사실을 안 찰리는 가디에게, 단 한 번이라도 진짜 모습을 보여 보라며 분노한다. 이 타당한 분노에 가디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결국 찰리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찰리에게는 또 다른 혼란이 온다. 누가 적군이고 누가 아군인지, 적군으로 알고 있던 인물이 정말 적군이긴 한 건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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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 스틸컷 사진=왓챠플레이 |
찰리의 시작은 호기심, 그 다음은 모험심과 사랑이다. 혁명의 시대, 진취적인 성향의 한 여성이 멋모른 채 첩보 작전에 몸을 내던지고, 그 안에서 전혀 몰랐던 세상을 알아간다. ‘리틀 드러머 걸’이 단순한 첩보, 스파이물이 아니라 모험담과 성장사로 비춰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찰리는 아군과 적진 사이를 오가며 양쪽 사람들에게 객관적인 이야기를 듣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드라마에서 균형을 잡을 줄 아는 유일한 인물이다.
시청자들은 가디가 던지는 힌트 조각을 줍는 찰리가 되어 미로 같은 구성을 쫓아가야 한다. 그래서 인물의 진심은 무엇이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구분하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일말의 거짓 없이 존재하는 순간도 있다. 칼릴의 최후다. 칼릴이 가디에 의해 죽기 직전 씬의 모든 컷은 시점샷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떠한 속임수도 없이 진실하게 서로를 마주한 찰리와 칼릴의 대화에서 오는 여운은 꽤 짙다.
박찬욱 감독은 ‘리틀 드러머 걸’을 통해 다시 한번 여성 서사를 그렸다.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그의 스토리가 찰리를 만나 만개한 듯하다. 매 작품마다 강렬한 엔딩을 선사했던 박찬욱 감독의 연
‘리틀 드러머 걸’은 스토리 진입 단계인 1, 2부가 다소 복잡하게 느껴져 흥미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흐름을 타는 3부부터는 속도감 있게 전개돼 흡인력이 대단하다. 한 번 흐름을 놓치면 극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한 번에 몰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김노을 기자 sunset@mkculture.com